
지금이야 Melechesh도 Arallu도 Cosmic Conqueror도 어떻게 들어본다지만, 이스라엘 블랙메탈이라면 Bishop of Hexen이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시절 흔치 않게 접했던 이스라엘 밴드인만큼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이 앨범이 Bishop of Hexen의 데뷔작보다 먼저 나왔으므로… 이렇게 얘기하면 Grimoire로서는 좀 억울할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Bishop of Hexen이 어쨌든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반면 Grimoire는 이 한 장만을 남기고 스윽 사라져 버렸으니 아무래도 무게추는 Bishop of Hexen 쪽으로 기운다. 그러니까 억울하면 살아남았어야 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저 칼인지 막대기인지를 들고 뛰어내리고 있는 사나이의 정체가 궁금하게 만드는 웃기는 커버와 반대로 음악은 꽤 준수한 심포닉 블랙메탈이다. 일단 블랙메탈 치고도 음질이 형편없었던 Bishop of Hexen의 데뷔작에 비해서는 음질도 꽤 괜찮고 키보드도 화려하지만, 그러면서도 과하지 않게 곡에 녹아드는 편이다. ‘A Requiem for the Light’ 같은 곡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나름 화려한 건반이 절대 기타와 베이스를 누르고 앞서가지 않는다는 것도 여타의 B급 밴드와는 조금은 격을 달리하는 편이다. 중동 출신 밴드들이 많이들 그렇지만 뭔가 우리네 정서를 자극하는 듯한(달리 말하면 뽕끼 묻어나는) 멜로디를 친숙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멜로디 때문에 쉬이 질려버리는 이들도 꽤 되겠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는 퀘벡 Grimoire에 밀려 앨범명 안 넣으면 검색도 잘 안 되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좋은 앨범이다. hidden gem 소리는 꽤 자주 듣긴 하는데 다들 말만 하고 사질 않는지 재발매도 안 되는데 가격도 안 올라가는 비운의 앨범이기도 하다.
[Euphoniou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