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레이블들 중 돈 떼먹기 분야 최고봉이라는 나의 (근거만큼은 나름 확실해 보였던)Wild Rags에 대한 편견을 처음으로 흔들거리게 해 준 앨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앨범의 이모저모는 내가 딱히 좋아할 만한 부분이 보이질 않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이 독일 밴드는 1986년부터 시작됐고 Napalm Death의 “Scum”이 나온 게 1987년이었으니 비록 이 앨범은 1989년에 나오긴 했지만 좀 관대하게 봐 주면 그라인드코어의 초창기를 다진 밴드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Scum”에 비하면 이 앨범은 모든 면에서 조악하고, 막말로 하면 앨범의 절반 정도는 그라인드도 아닌 그냥 노이즈코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희망 없는 음질과 그라인드의 맹아답게 단순하기 그지없는 스타일은 앨범에서 기억에 남는 리프 하나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데, 그래도 흥겹게 다듬어진 D-Beat 스타일의 ‘Enigmatize’ 정도가 비교적 듣기 편할 것이다.

Agathocles를 듣고 감내할 수 있다면 좋게 들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장르의 초창기 맹아 정도로 넘겨도 무리없지 않을까? 물론 장르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는 필수 코스겠지만, 그라인드코어 리뷰를 쓰는 대중음악평론가 같은 전대미문의 존재를 생각하기 어려운만큼 크게 의미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라이브러리를 채우는 정도라면 차고 넘치겠지만 추천하긴 좀 애매하다.

[Wild Rags, 1989]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