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in June의 전성기의 마지막 끝자락? 사실 이 밴드야 커리어 전반에 걸쳐 기복이 딱히 심한 건 아니었고, 특히나 90년대에는 더욱 그랬지만(물론 중간에 “Occidental Martyr” 같은 지뢰도 있다만) 그래도 정점은 아마도 “But, What Ends When the Symbols Shatter?”와 “Rose Clouds of Holocaust”라는 데 이견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결국 Douglas P.의 물 오른 창작력이 “Take Care and Control”까지였나, 아니면 “All Pigs Must Die”까지였나가 많은 이들의 논쟁점일 것이다. 극소수의견으로 “The Rule of Third”까지 잡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건 2008년에나 나온 앨범이니 같이 묶기엔 아무래도 좀 그럴 것이다.

이 앨범을 그 전성기의 끝자락에 묶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아무래도 앨범 전반부에 있다. 앨범명부터 World Serpent에 쌍욕을 내던지며 Albin Julius와 결별한 Douglas P.가 대신 맞이한 파트너는 Forseti의 Andreas Ritter였고, 그 ‘시간낭비하기 좋아하는 이들'(‘Tick Tock’의 서두를 참조하시길)과 헤어지고 생각났던 건 David Tibet과 함께하던 시절이었는지 이 앨범의 초반부는 다시금 “Rose Clouds of Holocaust” 시절의 네오포크를 보여준다. 여기에 Andreas Ritter가 합세하면서 더해진 아코디언이나 플루트 연주는 이 ‘위악적인’ 밴드에게서 보기 드물었던 낭만적인 면모를 선사하는데(특히나 ‘Disappear In Every Way’), 그렇게 잠시 서정에 빠지다가 곧 등장하는 돼지 세 마리에 대한 냉소적인 저주를 들으면서 청자는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이 앨범이 Death in June의 작품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하지만 ‘We Said Destroy II’부터 앨범은 급격하게 노이지한 방향으로 선회하고(아마 Boyd Rice의 탓일 것이다), ‘Lord of the Sties’에서는 과장 좀 섞는다면 데스 인더스트리얼에 가까운 면모까지 살며시 드러난다. 갑자기 왜 이렇게 나아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여전히 가사는 앨범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World Serpent 욕인 걸 보면 어쩌면 잔뜩 뿔이 난 Douglas P.가 그 시절에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이 이런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말이다.

[Tesco, 2001]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