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름을 쓰는 밴드들 중 (내가 아는 한도에선)유일하게 그래도 잘 나가고 있는 캐나다 블랙메탈 밴드의 근작. “The Suns of Perdition”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연작을 내고 있는데, 이번에 세 번째니 이제 할 만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전작인 “Chapter II : Render unto Eden”는 보기 드물게 그루브를 잘 써먹는 괜찮은 블랙메탈 앨범이었지만 일단 이런 스타일은 내 취향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고, Eisenwald라는 레이블도 사실 이런 류의 음악이 잘 나오는 곳은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접한 신작은 역시 전형적인 블랙메탈과는 비껴가 있으면서도 조금 의외의 음악을 담고 있다. 전작이 그 ‘그루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블랙메탈이 근간이 되는 앨범이었다면 이번에는 블랙메탈의 기운을 조금 더 걷어내고 그 자리를 Neurosis풍 슬럿지로 채우고 있다. 리프만 떼어놓고 보면 블랙메탈이지만 곡의 전개를 보면 확실히 소위 ‘포스트-메탈’의 기운이 있다. 특히나 ‘Death-Drive Projections’의 클린 톤 기타와 뒤틀린 코드의 트레몰로를 병치시키는 모습은 Cult of Luna 같은 밴드와도 닮아 보인다. ‘The Far Bank at the River Styx’에서는 좀 더 묵직하게 연주된 슬럿지 리프와 중간중간 멜로딕 데스풍 브릿지를 꽤 매끈하게 연결해내는 솜씨도 볼 수 있다.
영리한 송라이팅이 돋보이지만 덕분에 이 밴드가 원래 어떤 밴드였는지 잘 모르고 이름만 보고 접한 이에게는 좀 당황스러운 경험이 될지 모르겠다. 만듦새만큼은 확실한만큼 좀 더 귀에 적응이 필요해 보인다. 내 얘기다.
[Eisenwald,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