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SS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사실 좀 거짓말이고, 이탈리아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자주 느꼈던 은은한 싼티는 결국 Death SS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밴드가 초창기에 보여준 번뜩이는 부분들이 훗날의 많은 밴드들이 참고했을 거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Mercyful Fate의 길을 걷기에는 프로그 물을 너무 먹었고 King Diamond 같은 보컬을 구할 수 없었던(그리고 말은 안해도 연주력도 좀 딸렸던) 밴드들이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인가를 저예산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까? 물론 이런 모습은 길게 잡아봐야 “Black Mass” 이후에는 Death SS 스스로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Paul Chain의 솔로작은 그런 Death SS의 초창기 노선이 Steve Silvester보다는 Paul Chain에게 더 빚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말이 솔로작이지 Death SS의 스타일과 크게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사이키함에 있어서는 Death SS보다 더했던지라 좀 더 앞선 시대의 프로그레시브한 하드록을 즐겨들은 이들에게는 Death SS보다 더 낫지 않았을까? 좋게 얘기해도 Alice Cooper 짝퉁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Steve Silvester의 보컬보다 은근히 John Arch 느낌 나는 Paul의 보컬도 나쁘지 않았고, 사이키 물 많이 먹은 NWOBHM풍 리프를 속도감 있게 연주하는 기타도 괜찮았다. Violet Theatre를 이름으로 붙였던 탓에 나름 연극적인 음악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Welcome to My Hell’이나 ‘In the Darkness’처럼 Goblin이나 록키 호러 픽처 쇼를 연상케 하는 모습은 이후의 Paul Chain의 앨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점이다.

말하자면 메탈인 건 분명하지만 사실 전형적인 헤비메탈 팬보다는 Uriah Heep(이나 좀 더 싼티나고 스푸키한 하드록 밴드) 류를 좋아하는 이들이 더 즐길 만한 음악일 것이고, 생각해 보면 Paul Chain 커리어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두드러진 한 장을 꼽는다면 유력한 후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Paul Chain이 이 시절 스타일에 Black Sabbath식 둠을 더하면서 이후 Pentagram류 둠 메탈의 흐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식의 설명(이견도 꽤 되는 듯 하지만)은 덤이다.

[Minotauro,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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