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앨범들 듣는 김에 간만에. 그런데 이것도 “The Visitor”처럼 1998년작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1996년작이더라. 하긴 나쁜 앨범은 아니지만 솔직히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고 이런저런 중고음반샵들에도 자주 보이는 대표 악성재고들 중 하나인지라 나도 이 앨범을 다시 들어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앨범을 한줄요약한다면 Exhorder가 “The Law” 이후 해체하지 않고 다음 앨범을 낼 수 있었다면 나왔을 만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을 스쳐간 단기 스래쉬 거물 중 하나처럼 얘기되는 밴드였지만 “The Law”는 어쨌든 Pantera의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그루브 메탈 물 많이 먹은 음악이었고, 누가 뭐래도 밴드의 핵심이었던 Kyle Thomas는 밴드가 끝장난 후 숨겨왔던 취향을 드러내듯 더욱 그루브하다 못해 슬럿지 물 왕창 먹은 새로운 밴드로 등장해서 90년대 후반 그루브가 없는 앨범은 내주지도 않는 듯한 허탈한 카탈로그를 과시하던 Roadrunner에서 이 한 장을 내놓았다. 말하자면 나처럼 슬럿지 스타일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구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앨범은 사실 나쁘지 않다. 스래쉬 딱지를 붙였지만 정작 들어보니 슬럿지였던 사례는 이미 Corrosion of Conformity로 경험했으니 당혹스러울 것까진 아니었고, 적당히 블루지하면서도 흙 냄새도 풍기는 모습은 아무래도 Down을 떠올릴 수밖에 없으니 음악은 생각보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스타일이다. 바꿔 얘기하면 레드넥들이 연주하는 Black Sabbath풍 메탈(특히나 ‘Whole’)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적어도 이 즈음 나오던 ‘그루브’ 메탈 앨범들 가운데에서는 그 ‘그루브’에 거부감을 가진 완고한 메탈헤드들을 설득하기에는 이만한 앨범도 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 희망 없는 커버를 견뎌낼 수 있는 이라면 일청을 권한다.

[Roadrunner,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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