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얘기 나온 김에 좀 더 시절을 거슬러 한 장 더. 1994년이면 데스메탈이 힘을 잃었다고 얘기하긴 좀 이르지만 이미 국내 라이센스반의 많은 해설지들에서는 트렌드에 밀려 힘을 잃기 시작하는 데스메탈의 이야기가 쓰일 시절이었고, In Flames와 Dark Tranquillity가 ‘높은 벽에 부딪힌 데스메탈의 앞길을 수려한 멜로디와 함께 선도하는 신진 세력!’ 식으로 소개되기 시작할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커버를 걸고 나오는 그리 전형적이지도 않은 스타일의 뉴욕 데스메탈 앨범이 망하는 건 사실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 앨범은 1994년 나온 데스메탈 앨범들 중에서 최고를 말한다면 첫손에 꼽지는 못하더라도 유력한 후보로 고민할 정도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커버는 사실 블랙메탈 생각이 나지만 정작 음악을 들어보면 “Altars of Madness” 시절의 Morbid Angel을 때로운 그라인드코어에 가까울 격렬한 템포에 실어내는 데스메탈에 가깝고, 아무래도 그라인드코어처럼 직선적이고 짧게 끊어내는 스타일(일단 2분 넘어가는 곡들이 별로 없다)인 이들이 좀 더 거칠게 들릴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 시절 블랙메탈에서라면 그리 특이하진 않을 ‘스푸키한’ 분위기의 건반과 David Vincent 스타일의 보컬도 비교적 잘 어울리는 편이다. 사실 이렇게 격렬한 템포 덕분에 뉴욕 데스메탈 특유의 리프의 맛을 느끼기는 좀 어렵게 느껴지는 면도 있는데, 그렇다고 이 밴드가 엄청 테크니컬한 정도까진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밴드의 개성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그러니까 훗날 Alex Hernandez가 Immolation의 드럼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아무래도 이 앨범에서의 퍼포먼스가 역할이 컸을 것이다. 장르의 팬이라면 만족하기 충분할 것이다.
[Listenable,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