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빠지는 앨범을 들었으니 간만에 클래식 한 장을. 사실 Nazgul’s Eyrie에서 나온 앨범들 치고 한 번에 꽂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편인데(일단 거기엔 레이블의 개똥같은 음질 정책이 한몫했겠지만), 떡잎부터 지나치게 기린아였던 Behemoth나 떡잎부터 지나치게 구수했던 Countess 같은 경우들을 제외하고 보면 가장 굳건한 입지를 자랑하는 앨범에는 아마도 이 한 장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90년대 중반에 튀어나온 밴드가 그 시절 노르웨이풍을 거의 맞지 않은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 덕도 있을 것이고, 이탈리아 밴드인 주제에 어째 특유의 싼티를 기묘하게 비껴간 덕도 있을 것이다(바꿔 말하면 Death SS 느낌이 생각보다는 덜 난다는 뜻이다). 어찌 됐건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다.
밴드의 음악에서 가장 짙은 그림자로 다가오는 것은 역시 Celtic Frost겠지만 가장 비슷한 부류로 비교할 만한 밴드는 아무래도 Master’s Hammer가 아닐까? 보통 블랙메탈이라고 부르지만 동시대의 다른 밴드들보다는 좀 더 스래쉬한 스타일을 유지했고, 그러면서도 오컬트 테마를 바짝 붙들고 전형적인 헤비메탈 전개와 특유의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아마도 일본의 Sabbat가 참고했을 법한 중간중간의 포크 패시지(특히나 ‘Wandering Spirits’) 등은 이 밴드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이후의 어떤 블랙메탈의 흐름을 이끄는 단초가 되었음직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어찌 보면 이런 스타일을 가장 잘 팔릴 만한 형태로 다듬고 다듬어 나온 게 Ghost 같은 밴드 아닐까? 장르의 통상보다 확실히 강조된 베이스 연주가 몰고 오는 구수함을 이겨낼 수 있는 이에게는 분명 확실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앨범일 것이다.
[Nazgul’s Eyrie Prod.,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