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ronymous가 없는 Mayhem의 첫 앨범은 당연히도 그 이전에 밴드가 보여주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음악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Euronymous의 자리를 제외하면 “Deathcrush” 시절의 라인업이 다시 모여 만든 음악인만큼 Euronymous 사후 밴드가 꾸릴 수 있었던 가장 오리지널에 가까운 멤버 구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어찌 생각하면 Euronymous의 독재 아래 별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잔여 멤버들이 생각했던 블랙메탈의 모습을 구현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애초에 Misanthropy에서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남은 멤버들은 생각보다 Euronymous의 빈자리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Euronymous 특유의 음습함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확실히 좀 더 테크니컬하면서 타이트해진 연주를 보여주는 Blasphemer의 기타,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그리고 그야말로 기량발전이 돋보이는) Hellhammer의 드럼, 전형적인 블랙메탈 보컬 스타일과는 분명 거리가 있지만 광기라는 면에서는 아마도 첫손가락의 유력한 후보일 Maniac의 보컬, 이 틈바구니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꽤 놀라운 Necrobutcher의 베이스. 그러니까 밴드는 이 EP에서 와서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확실히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이 앨범과 함께 ‘Elite Black Metal’이라는 생소한 표현이 슬슬 해외 블랙메탈 웹진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긴 블랙메탈의 근본을 논한다면 이들만한 밴드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Funeral Fog’와 (그나마)비슷한 구석이 있는 전개나 리프를 보여주는 ‘Ancient Skin’ 같은 곡에서 이 밴드가 바로 그 Mayhem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 길지 않지만 적당히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웰메이드’ 블랙메탈 앨범인만큼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의문의 여지 없이 멋진 앨범이다.

[Misanthropy,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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