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llion을 제외하면 나는 영국 네오프로그 밴드들 중 가장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밴드는 Twelfth Night라고 생각한다. Fish도 있긴 했지만 연극적이라는 면에서 Fish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Geoff Mann이 있었고, 이쪽 장르가 대개 그렇지만 Steve Hackett의 좋은 점을 많이 닮아 있었던 Andy Revell의 기타가 있었고, 그러면서도 동시대 펑크나 NWOBHM 물을 은근히 먹은 덕에 다른 네오프로그 밴드들에 비해 확실히 ‘화끈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이 밴드의 별명 중 하나가 ‘Punk Floyd’였기도 하고(물론 Pink Floyd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만).

그 중에 한 장을 고른다면 단연 “Fact and Fiction”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Twelfth Night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리 Geoff Mann은 이 밴드에서 딱 두 장 내고 나가 버렸는데, 아무래도 데뷔작다운 빈티가 좀 강했던 데뷔작을 고르는 이는 많지는 않을테니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닐게다. IQ 생각도 좀 나는 적당히 그림자 드리운 키보드와 괴팍하면서도 연극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보컬, 대처 시대의 영국을 삐딱하게 비꼬는 가사, 특이한 박자를 쓰진 않지만 뜯어보면 꽤나 복잡하게 구성된 리듬(특히 ‘Fact and Fiction’) 등 네오프로그 팬들이 원하는 거의 대부분이 모두 들어 있다. ‘Human Being’의 은근슬쩍 들어오는 신스 팝 연주도 힘있는 기타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Marillion이 데뷔하기 전에 나온 앨범이다. 후배가 워낙 압도적이라서 묻히는 건 당연하겠지만 장르의 팬이라면 이 앨범은 구해볼 가치가 있다. 최근에 각종 보너스들 까지 바리바리 싸서 3CD 버전으로 재발매됐으므로 관심있는 분은 그쪽을 알아보시는 게 나을 것이다.

[Self-financed,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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