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고 보면 Death라는 이름을 쓴 밴드는 누구나 아는 바로 그 밴드를 빼면 사실 본 적이 없는데 Demise라는 이름의 밴드는 무척이나 많이 본 기억이 있다. 하긴 1980년대 이후 Death라는 이름으로는 어떻게 해도 Chuck Schuldiner의 많이 레벨 딸리는 따라지 취급을 받았을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으려나. 바꿔 말하면 Demise라는 이름의 그 많은 밴드들 중에 딱히 인상적으로 남은 경우는 없었다는 얘기다. 이름이 실질을 지배하는 건 아닐진대 신기한 일이다.
이 그리스 밴드는 metal-archives에 의하면 1996년에 “…Thrashed…”라는 데모를, 1995년에 “…Thrashed!!!”라는 데모를 냈다고 하는데, 이 기묘한 테이프는 제목은 “…Thrashed!!!”이면서 수록곡은 저 “…Thrashed…”와 똑같으니 이게 제대로 된 물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 시절 그리스 스래쉬 데모치고는 녹음은 기대보다 나쁘지 않다. 탬버린처럼 들리는 심벌이 거슬리지만 Kreator의 초창기를 연상케 하는 리프와 희미하지만 어쨌든 존재가 확인되는 베이스 연주, 좀 더 테크니컬했으면 좋았겠지만 어쨌든 적당히 부족한 연주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솔로잉(잘 친다는 얘기는 어쨌든 아님) 등도 장르의 기본에는 충실한 편이다. 말하고 보니 ‘Maneating Warhorse’의 쓸데없이 은은히 깔리는 신서사이저도 꽤 거슬리지만 노력하는 모습 정도로 봐주고 넘어간다.
말하자면 좋은 건 별로 없지만 장르의 팬이라면 노력하던 어느 90년대 지하실 스래쉬 밴드의 모습을 기대하며 들을 만한 데모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밴드의 모든 데모를 모은 “Anthology”가 2021년에 나왔다고 하니 굳이 관심있는 이라면 그쪽을 구하는 게 이래저래 더 나아 보인다.
[Self-financed,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