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옛날 얘기. Shrapnel과 Magna Carta의 앨범들이 지구레코드 마크를 달고 나훈아 앨범들과 똑같이 장당 8천원에 나오던 시절이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가장 음반 모으는 게 재미있었던 시절이었던 듯싶다. 물론 블랙메탈 모으는 데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 시절 헤비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메탈 모으는 데 이만큼 큰 도움을 줬던(해설지 빼고) 국내 레이블은 거의 없었다. M.A.R.S의 “Project : Driver”나 Cairo의 앨범들은 그 시기의 한가운데에서 구한 앨범들이었다. 전자야 물론 1985년작이기는 한데 그 시절에는 일단 내가 메탈이고 뭐고 뭘 들었을 리가 없어 보이므로…

그런데 오늘에서야 안 사실은 Cairo의 보컬이었던 Bret Douglas가 “Project : Driver” 앨범에도 배킹보컬로 참여했다는 점이었다. 58년생이었으니까 Cairo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팔팔한 20대 중반에는 이런 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셈인데, 30대가 되고 좀 더 힘이 빠지면서 본격 John Wetton 스타일로 프로그레시브를 시작했다고 이해하면 되려나. 확실히 Cairo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도 Cairo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메탈릭한 이 앨범에서의 모습이 그 시절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본격 메탈 앨범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Keith Emerson과 Eddie Jobson을 잘 섞어놓은 듯한 Mark Robertson의 키보드가 주도하는 후기 Genesis풍(이건 아무래도 Steve Hackett을 의식했을 기타 덕분일 것이다) 조곡을 좀 더 ‘메탈릭’하게 만든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보컬이 보컬인지라 Asia 생각도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면에서는 어린 시절 듣고 자랐던 프로그(와 네오프로그)의 유산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소화해낸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Then You Were Gone’에서만큼은 Bret은 잠시나마 John Wetton 이상의 기량을 선보인다. 부끄럽지 않은 후배였던 셈이다.

말하자면 그네들의 ‘좋았던 시절’을 나름대로 수려하게 풀어놓은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맥락은 좀 다르지만 나도 이걸 들으면서 나의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으니 앨범의 목적은 나름대로 완수된 게 아닐까. 즐거운 시간이었다.

[Magna Carta,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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