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DSBM 클래식 소리까지 듣는 듯한 앨범이고, 이후의 DSBM 밴드들이 아마도 이 앨범을 많이들 의식했으리라는 얘기도 분명 맞겠지만, 생각해 보면 Abyssic Hate를 DSBM 밴드라고 생각했던 적은 내 경우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유야 굳이 찾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들 중 하나는 내 기억에 이런저런 웹진들에서 ‘depressive black metal’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Shining의 “Within Deep Dark Chambers”가 나왔을 즈음이었다는 사실(그나마도 절반은 ‘suicidal black metal’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일 것이다. 2000년에 나오긴 했지만 사실 1997년에 나온 데모의 재녹음인 이 앨범의 곡들은 따진다면 DSBM이란 용어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셈이다. 하긴 그러니까 이 앨범이 DSBM 클래식 소리를 듣는 걸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근래의 많은 DSBM이 보여주곤 하는 ‘어둡다기보다는 징징대는’, 사실 ‘suicidal’ 하다기보다는 지나친 자기애의 뒤틀린 표현에 가까워 보이는 감상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음악이라는 점이다. 이후 DSBM 밴드들이 많이들 보여주는 반복적이고 미니멀한 리프 중심의 전개 방식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 외에 이 앨범이 DSBM이라고 불릴 이유는 사실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Betrayed’의 리프는 이 밴드가 애초에 이런 스타일의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밴드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떠올리게 한다. 어찌 보면 훗날 post-black이라 불릴 스타일이 장르의 주류로 스며들기 전 원맨 블랙메탈 밴드가 보여줄 수 있었던 전형적인 모습의 정점을 담고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니까 생각보다 투박하다! 식의 평이 이제는 좀 많아 보이는 앨범이지만, 그 투박한 게 문제라기보다는 이제는 사람들이 그런 투박한 류의 블랙메탈을 별로 듣지 않고 있다는 게 더 맞는 얘기가 아닐까? 하긴 2000년에도 이 앨범을 찾아듣는 이는 별로 없긴 했겠지만 말이다.
[No Colours,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