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ltra”를 Depeche Mode 최고의 걸작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냐 하는 이들도 꽤 많겠지만, “Ultra”가 밴드의 가장 어두우면서 걸출한 앨범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지 않을까? 나처럼 Depeche Mode의 한창 시절 한 푼이 아쉬웠던 학생이었다면 아마도 “Songs of Faith & Devotion”이나 이 앨범으로 Depeche Mode를 처음 접한 사례가 많을 것이고(다른 이유는 없고 라이센스니까), 그런지 냄새와 약 냄새가 묘하게 공존하던(덕분에 묘하게 퇴폐적이었던) 전자에 비해서는 좀 더 어둡고 잘 다듬어진 팝에 가까웠던 “Ultra”가 그 중에서는 좀 더 내게 맞는 편이었다. 본격 록 밴드의 탈을 쓴 Depeche Mode의 모습이 사실 그리 맘에 들지 않던 것도 있었다. 다른 밴드들 많은데 굳이 Depeche Mode가 직접 기타를 잡을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앨범의 락스타의 휘광은 사라졌지만 그나마 록적인 기운이 조금은 살아있는 ‘Barrel of a Gun’이나 ‘Useless’ 같은 곡보다는 밴드의 어두운 면모가 돋보이는 ‘Freestate’나 ‘Sister of Night’, ‘The Bottom Line’ 같은 곡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분위기를 고딕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Depeche Mode가 나름의 방식으로 ‘영적인 분위기’를 풀어낸 팝송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긴 한창 시절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개차반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던 Dave Gahan이 ‘회개하던’ 시절 음악이니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앨범을 듣고 나름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불 꺼 놓고 듣고 싶다.
[Mute,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