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azemth가 무려 작년에 새 앨범을 냈었다길래 작년 앨범은 일단 잘 모르겠고 간만에 꺼내 들어보는 EP. 예전에는 정말 어느 중고음반점을 가더라도 한 장씩은 먼지 뒤집어쓰고 박혀 있던 앨범이었는데 이제는 앨범이 아니라 블랙메탈 음반을 취급하는 중고음반점 자체를 보는 게 어려운 시절이 되었으니 소리없이 참 뭐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이 스페인 밴드는 Abstract Emotions에서 딱 두 장의 EP만을 내놓았는데, 첫 앨범이었던 “For Centuries Left Behind”에 대한 평가가 스페인 밴드 치고 대단한데? 식이었다면 이 “Fatherland”에서 그런 평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개끗발도 그런 개끗발이 별로 없을 정도로 사그라져 버렸다. 일단 커버부터가 이 앨범이 확실히 훨씬 싼티나 보이기도 하고, 이 레이블이 딱히 심포닉블랙을 주로 내는 곳은 아니었지만 Abstract Emotions라면 다들 Asgaroth의 앨범만을 찾아다니던 시절이었다. 키보드가 있다지만 심포닉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밴드가 주목받을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 들어보면 그 때 그렇게까지 얘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앨범은 나쁘지 않게 들린다. 평범한 멜로딕 블랙메탈이라는 거야 분명하지만 1996년작 블랙메탈 앨범에 무슨 혁신을 기대하는 것도 곤란할 일이고, 이 앨범이 욕을 먹었던 지점 중 하나는 “For Centuries Left Behind”가 거친 질감으로 보여준 노르웨이풍이 좀 사그라지고 헤비메탈풍 리프가 빈자리를 메꿨다는 점이었는데, 지금 들어보면 그냥 이 밴드는 나름의 바이킹 무드를 집어넣고 싶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Rotting Christ라는 우수사례도 있으니 말이다. 분노의 크로매틱 연습량이 느껴지는 기대 이상의 솔로잉도 귀를 잡아끄는 구석이 있다.
흘러간 hidden gem! 식으로 얘기하면서 심지어 초기 Immortal이나 Emperor를 갖다붙이는 인터넷상의 평가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만 짧은 러닝타임 동안만큼은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을 앨범. 그래도 이 밴드를 딱 한 장만 고른다면 “For Centuries Left Behind”가 낫지 않을까… 뭐 그렇다.
[Abstract Emotion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