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블 이름을 보고 통상 기대하게 되는 스타일이 있기 마련인데 Willowtip의 경우라면 그렇게 기대하게 되는 음악이 사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은 아님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밴드를 내지 않는다기보다는 이 레이블에서 나온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앨범들에서 재미를 본 적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뜻이다. Sadist 라틴 버전스럽던 Alarum의 앨범 정도가 예외랄까.
그런 면에서 The Anchoret의 이 데뷔작은 이 레이블에서 나온 ‘프로그레시브’ 앨범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프로그 레떼르를 붙이고 장르 백화점 같은 앨범을 내놓는 이들은 생각보다 꽤 자주 보이는데, King Crimson스러운 재즈 어프로치와 멜로트론, Opeth를 좀 더 모던한 질감으로 바꾼 듯한 곡의 전개, 취향은 좀 탈지 모르지만 Pain of Salvation에서 격정을 좀 덜어낸 듯한 클린 보컬 등 이 앨범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확실히 좀 더 넓어 보인다. 격렬한 색소폰의 존재감은 Ihsahn이 솔로작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연상할 만한 구석이다. 덕분에 Dream Theater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All Turns to Clay’ 같은 곡이 앨범 안에서는 오히려 더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는 다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모습이지만 밴드 나름의 개성은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밴드가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묵직한 리프의 앨범을 들으며 David Gilmour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어디 가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과장 조금 섞으면 이런 앨범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 할 수 있어 보인다. 개인취향으로는 좀 덜 모던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멋진 앨범이다.
[Willowtip,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