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네오프로그 밴드의 데뷔작. SI Music에서 재발매한 버전으로 보통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1970년대에 이미 결성해서 1981년에 이 데뷔작을 낸 나름대로 베테랑…이라고 하나 이 한 장 내고 망했다가 이후로는 거의 10년 간격으로 두 장의 자주반만을 내놓았으니(물론 이 두 장은 못 들어봤음) 베테랑 어쩌고 하는 건 그냥 미사여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왜 이걸 구했는가 한다면 나야 세평이야 어쨌건 SI Music을 꽤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데 SI Music을 왜 좋아하냐고 다시 묻는다면 어째 떠오르는 답이 딱히 없다. 그냥 길티 플레져라고 해 두자.
음악은 좋게 표현하면 Camel의 대중적인 측면을 의식했을 말랑말랑한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운 심포닉 프로그레시브(라기보다는 멜로딕 록)에 가깝다. 말하자면 SI Music에 ‘니네가 그러고도 프로그레시브 레이블이냐?’라는 식의 악평을 던져주는 주된 원인이 된 바로 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비교한다면 이창식이 “단식예술가”에서 보여준 것보다도 조금 더(사실은 많이) 심플한…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다. 복잡한 전개보다는 기타가 이끄는 멜로디라인을 키보드가 보통의 심포닉 프로그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며 나름의 공간감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는 Eloy와 비슷하다고 할지도? ‘No Chance’같은 곡의 전개가 전형적인 사례라고 하겠는데, 이걸 너무 구태의연하다고 할 사람도 많겠지만 하긴 이 시절 네오프로그가 많이들 그랬다. 바야흐로 Marillion이 사실은 이게 제대로 된 네오프로그라고 하며 데뷔작을 내놓기도 이전이었다.
그래도 ‘Life’ 같은 곡은 훗날의 Jadis 같은 밴드가 참고했을 법한 모습이 있고, SI Music 재발매반에 포함된 ‘Don’t Break the Silence’는 어쨌든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영국의 Clive Nolan을 위시한 ‘네오프로그 패밀리’ 밴드들과는 다른 건반의 용례를 보여준다. 장르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볼만 할지도.
[Self-financed,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