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메탈에 아마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많은 매체들에서 올해 최고의 메탈 앨범을 뽑으매 은근히 이름이 많이 등장하던 이 벨기에 원맨 밴드가 완전 생소한 거 보니 내년에는 좀 더 열심히 이거저거 들어보리라… 하는 마음 속 결심을 다져본다. 물론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가족들이 시원하게 등짝을 후릴지어니 입조심의 중요성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말하면서도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 됐는데 뭔 쓸데없는 소리인가 싶다. 각설하고.

음악은 꽤 독특하다. 때로는 사이키델릭하지만 기본적으로 선명한(하지만 그 자체로는 꽤 신경질적인) 리프에 실리는 그로울링, 그러면서 뒤를 받치는 주술적인 코러스와 데스메탈식 전개, 그러면서도 때로는 둠에 가까울 정도로 둔중한 무게감을 보여주는 모습이 앨범 한 장에 모두 등장한다. 사실 블랙메탈에 데스/둠이 섞여가는 모습이야 이제는 드문 건 아니다만 적당히 오컬트한 분위기에 Blut aus Nord식 사이키델리아가 섞여들어가는 모습은 꽤 독특한 구석이 있다. 어찌 보면 ‘brutal psychedelia’라는 말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앨범도 흔치 않을 것이다. ‘The Arcana XIII: Dawn of the Red Scorpio’는 그런 의미에서 이 생소할 것까지는 없는 스타일이 2023년에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사이키하다 못해 드론 둠까지 나아가는 ‘Bios-Phos-Metis’가 사실 좀 피곤하게 느껴졌다는 걸 빼면 꽤 즐겁게 들었다. 문제는 46분짜리 앨범에서 이 ‘Bios-Phos-Metis’가 3분의 1을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분명 기분좋게 들었는데 다 듣고 나면 생각보다 되게 피곤해지는 게 아쉬움이겠지만 어찌 생각하면 그냥 마지막 곡은 패스하고 끝내면 될 테니 큰 문제까지는 또 아닐지도.

[I, Voidhang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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