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초반 프로그 씬이 더없이 지리멸렬해지고 씬의 거물들이 결성했던 팝스 지향형 밴드들을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단연 엄지손가락의 자리에는 역시 Asia가 있을지어다. 일단 브리티쉬 프로그 근본 중의 근본에 가까운 멤버들이 모여 만든 밴드인지라 개개인의 기량도 그렇고, 걸출한 프로그 밴드들 출신답지 않게 약간의 프로그 레떼르가 녹아 있긴 하다만 비슷한 다른 밴드들보다도 더욱 명료한 구성의 팝을 연주한지라 본진의 팬들에겐 욕을 먹었을지언정 나 같은 귀 짧은 이들을 사로잡기에는 더할나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25년만의 Asia의 원년멤버들이 다시 모여 가진 라이브를 담은 이 앨범은 그 자체로 눈길을 모으고, 이 멤버들이 라이브에서 내놓은 셋리스트는 Asia의 주요 넘버들만이 아니라 멤버들이 거쳐 온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의 핵심 밴드들의 명곡들을 아우르고 있다. ‘Roundabout’이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Fanfare for the Common Man’ 같은 곡이 셋리스트에 자연스레 끼어들 수 있다는 게 이 슈퍼 밴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Geoff Downes 덕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까지 끼어드는 셋리스트는 이걸 현장에서 봤다면 되게 뜻깊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무래도 힘이 빠져도 많이 빠진 John Wetton의 목소리와 밴드의 확실히 예전같지 않은 에너지는 이 앨범을 ‘nostalgia trip’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되는 ‘Don’t Cry’ 등 “Alpha”의 수록곡들은 이 힘 빠진 공룡의 처진 어깨를 더욱 부각시키는 듯하여 많이 아쉽다. 그나마 John Wetton과 Carl Palmer가 Chris Squire와 Bill Bruford의 한창시절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한 ‘Roundabout’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느낄 수 있지만, Asia 앨범 얘기를 하면서 이 앨범의 장점을 ‘Roundabout’이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본전 생각까진 아니지만 아쉬움을 지울 순 없을 라이브 앨범이다.
[Eagl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