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talij Kuprij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한 장. Artension의 앨범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라이센스된 거로 기억하는데 하필 “High Definition”과 함께 나오는 바람에 둘 중에 이쪽을 고른 이는 별로 없었다는 후문이 있다. 애초에 Artension의 이름을 알고 있을 만한 사람도 별로 없긴 했겠지만 알고 있는 이들도 대개는 Vitalij Kuprij에 대한 관심으로 접근했을 것이지 Artension이라는 밴드 자체에 매료된 경우는 정말 드물었겠거니 싶다.
이 밴드는 Vitalij가 스위스에서 클래식 공부하던 92-92년즈음 루체른에서 재즈 공부하고 있던 기타리스트 Roger Staffelbach를 만나 의기투합해서 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러니까 헝그리한 시절을 함께 겪어온 두 친우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밴드이건만 듣다 보면 Vitalij가 Roger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을 버스 태우고 고군분투하는 인상이 강한 게 문제이겠다. 나머지 멤버들이 훗날 다른 밴드들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생각하면 Vitalij가 아무리 뛰어난들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Roger도 입 다물고 리듬기타 수준으로 연주하고 있는 마당에 Mike Varney가 소개해서 왔을 뿐인 다른 멤버들이 뭐라고 말할 입장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프로그레시브 메탈로 흔히 분류되곤 하지만 곡의 전개는 사실 일반적인 파워메탈의 모습과 크게 차이는 없는 편인데, Vitalij의 건반이 주된 멜로디라인을 차지하고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톤으로 격렬하게 진행되는지라 기타의 역할은 앨범 전반적으로 약간의 솔로잉을 제외하면 사실 베이스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말하자면 그리 프로그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확실히 파워메탈답게 밀어붙이지도 않는지라 참 애매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도 비교적 더 프로그하고 날 선 키보드 연주를 볼 수 있는 ‘Valley of the Kings’나 ‘The City is Lost’가 앨범에서 돋보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John West가 힘차게 불러준들 이 앨범이 파워메탈 팬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기는 좀 힘이 딸려 보인다. Vitalij Kuprij의 팬이 아니라면 이 밴드는 그냥 넘어가더라도 크게 아쉬울 것까진 없을지도.
[Shrapnel,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