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mod라는 이름을 보면 Anekdoten이 먼저 생각나는 얼치기 프로그 팬인 나로서는 이 과작의 밴드가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는 게 꽤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음악만 보면 (그래봐야 블랙메탈이다만)나름대로 인기를 끌 만한 요소를 꽤 많이 보여주는 밴드이다. 결국은 Burzum의 어깨에서 Ulver를 뿌리로 하는 흐름으로부터 이어받았을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당히 거친 리프를 얹어주는 분위기 위주의 블랙메탈인데. 이들의 경우에는 Ulver의 정도를 넘어서서 거의 ‘ethereal’할 정도의 분위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Burzum과 Ulver 등을 운운했지만 이 밴드는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꽤 거리가 있는 편이다. 어찌 보면 저 ‘ethereal’한 모습은 ‘cascadian’ 블랙메탈의 스타일에 더 가까워 보인다.
12년만에 나온 신보이지만 그런 밴드의 노선은 여전하다. 차이가 있다면 일단 Prophecy의 야심작으로 나오는 2집인만큼 훨씬 돈 쏟아부은 티 분명한 깔끔한 녹음이 있겠고, 대개의 곡들이 블랙메탈의 뿌리를 강조하는 듯 곡들의 초반은 대개 강력하게 시작했다가 이후로는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은근한 사이키(하다 못해 때로는 블루지)함이 돋보이는 ‘Inn i lysende natt’나, Enslaved와는 다른 방향으로 ‘Pink Floyd풍’ 블랙메탈을 선보이는 ‘The Deepening’ 같은 곡이 대표적일 텐데, 그렇더라도 앨범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사실 일관된 만큼 앨범의 색깔이 다채롭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냥 나름의 개성을 신경쓰면서 장르의 문법에 충실하려 한 앨범이라 하는 게 맞아 보인다. 하지만 블랙게이즈와 90년대 블랙메탈의 전형 사이 어딘가의 애매한 지점을 가로지르는 이 스타일을 그냥 문법에 충실했다 하면 밴드 본인들은 웃기지 말라고 할 것 같다. 고급지게 잘 뽑힌 앨범인 건 맞는 만큼 그냥 2023년식 웰메이드 atmospheric 블랙메탈 정도로 해 둡시다.
[Prophecy,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