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딱히 안 다니지만 부활절이라니까 간만에 “Seasons End”를 들으려는데 이상하게 안 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Seasons End”보다 이 앨범을 더 좋아하므로 꽤 그럴듯한 선택이라고 강변해 본다. Marillion의 많은 앨범들 간에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모든 앨범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별로 인기는 없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꽤 자주 듣는 한 장을 고른다면 이 앨범이다. 일단 Marillion의 몇 안 되는 라이센스작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 앨범을 절하하는 목소리들은 이게 팝이지 뭐가 프로그냐 하는 편인데, 솔직히 Steve Hogarth가 마이크를 잡은 이후 Marillion이 팝적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Kayleigh’ 같은 곡을 너무 팝적이라고 하는 이들을 볼 수 없는 것에 비춰 보면 조금은 불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 왜 이런 결과가 나왔으려나? 짐작으로는 복잡한 구성과 Genesis에서 이어받았을 연극적인 분위기를 보고 싶어하는 게 보통의 프로그 팬들의 기대라면 그 보다는 좀 더 정적이고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보여주는 앨범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15분짜리 ‘This Strange Engine’의 극적인 면모도 그렇고, 앨범 시작부터 Hogarth 시대 Marillion이 어디까지 화려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Man of a Thousand Faces'(물론 조지프 캠벨의 그 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도 그렇고, 밴드 최고의 발라드 중 하나일 ‘Estonia’도 앨범의 가치를 높여준다. 어쨌든 ‘모던’보다는 클래식 록에 더 가까워 보였던 밴드가 훗날의 좀 더 모던해지는 사운드의 단초를 보여주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하다. 모던로크척결을 외치던 어느 메탈바보 고등학생에게는 어쩌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다시 보여준 앨범일지도 모르겠다.

[Intact,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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