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노르웨이나 그리스, 오스트리아의 90년대가 그랬듯이 다른 나라들의 블랙메탈 씬에서도 비슷한 밴드들의 ‘블랙메탈 서클’이 존재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저 서클들의 실상이 생각보다는 지리멸렬했음은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모를 만한 얘기는 아닌지라 굳이 이런 걸 만들어야 했을까… 라는 게 나 같은 업계 외부인의 시선인데, 이런 서클이 계속 생기는 걸 보면 사실은 얼마 안 되는 업계인들끼리 서로 교류하며 지내자는 소소한 의도의 발로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실제로 만나봤던 업계 종사자들은 대개 장르에 대한 일반의 편견들과는 판이하게 선량한 사람들이었다(전부라는 얘기는 아님).

Pure Raw Underground Black Metal Circle… 이라는 원초적인 이름의 블랙메탈 서클을 이끈다는 이 발파라이소 출신의 밴드는 Darkthrone의 그림자 짙은 블랙메탈을 연주하고 있다. 28분이 좀 안 되는 러닝타임 동안 노르웨이풍을 숨기려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이 중에 8분 가량이 건반으로 들려주는 인트로-인터루드-아우트로여서 짧은 시간 가운데 자주 쉬어간다는 인상을 준다. 하긴 전부 다 적당히 지글거리는 음질의 블랙메탈이니 적당히 쉬어가며 듣기에는 이런 게 더 나을지도? 하지만 이래서야 제값 다 주고 산 입장에서 본전 생각이 조금은 든다. 미드템포로 시작했다가 점점 고조되는 구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Pact with the Insane Spirits’ 같은 곡은 꽤 괜찮았기 때문에 더 아쉬운 것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처음 접한 밴드인데, 밴드를 이끄는 Magister Nihilfer Vendetta 218(아까부터 작명 센스 진짜…)도 이 장르에서 생각보다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류의 워크호스인지 앨범이 생각보다 많더라. 몇 장 더 구해 봐야겠다.

[Inferna Profundu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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