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eche Mode나 New Order 같은 이름들 덕분에 많은 이미지 순화가 이뤄져서 그렇지 Mute Records의 초창기 카탈로그를 보자면 이 레이블이 그 시절 어디 가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똘끼 넘치는… 레이블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초창기의 이름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름들 중 하나라면 역시 Boyd Rice일 텐데, 무려 Stumm 4번으로 Depeche Mode의 데뷔작보다도 먼저 나온데다… NON의 이름으로 나온 Boyd Rice의 앨범들의 수를 생각해 보면 Boyd Rice를 레이블의 가장 중요한 뮤지션들 중 하나라고 해도 많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논란거리로는 업계 최고봉일 인물인만큼 레이블로서는 용감하기 그지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80년대 초반이니까 가능했을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절이라고 Boyd Rice가 정상인이었을 리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Spell은 그나마 Mute에서 Boyd Rice가 내놓은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순한맛’에 가까울 프로젝트이다. 그래도 차트의 상단에 이름을 내밀던 메이저 팝 듀오의 멤버에서 네오포크를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 중 하나로 변신한 Rose McDowall과 함께 만든 커버곡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싼티를 완전히 감추지 못한 드럼머신과 신서사이저 위에 Rose의 예의 그 ‘ethereal’한 보컬을 얹은 스타일로 꽤 ‘스푸키’한 내용들을 담은 러브송들을 풀어냈으니 이 둘이 함께 만든 음악으로서는 이만큼 안전한 선택도 없을지도? 하지만 Jacque Brel의 원곡인 ‘Seasons in the Sun’을 극우전사 Boyd Rice가 연주하는 아이러니함이 매력적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Dolly Parton의 곡인 ‘Down from Dover’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선택일 것이다.

그래도 ‘Rosemary’s Baby(Lullaby Part 1)’나 ‘Stone is Very Very Cold’ 같은 곡은 이 듀엣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초에 러브송을 만질 사람들이 아닌데 굳이 러브송을 만진 나머지 제일 좋은 곡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격 러브송과 거리가 있는 곡들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쓰고 보니 이게 칭찬인가…

[Mute,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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