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로그에 대한 ‘뭔가 딱딱하고 어려운 듯한’ 선입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전형적인 사례(달리 말하면 독일이 낳은 Camel 짝퉁)로 흔히 소개되는 밴드이긴 하지만, Camel보다 겨우 1년 늦게 결성된 이 밴드를 그렇게만 소개하면 밴드 입장에선 꽤 억울하지 싶다. 하지만 결성만 빨랐지 밴드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앨범을 내놓은 건 1979년이었으니 말하고 보니 Camel과 같이 놀려고 한다면 그것도 또 많이 그렇긴 하다. 뭐 Camel에 비해서는 빛본 건 거의 없다시피한 밴드이니 적당히 봐주고 넘어간다.

그런 밴드의 역사를 생각하면 2000년 재결성 이후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프로그 물이 쫙 빠져 있는데, 그래도 뭔가 듣기 편해진 Porcupine Tree 같은 구석이 있었던 “Wrong”까지의 음악보다도 한 걸음 더 팝적으로 변한 이 앨범을 듣고 좋아할 사람보다는 본전 생각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프로그 하던 형님들이 80년대에 연주한 아재들의 길티 플레져 스타일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이 앨범도 꽤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에너제틱한 거야 기대하기 어렵지만(이 분들 연세를 생각한다면야) 멜로디는 어쨌든 귀에 잘 들어오는 편이고, 어쨌든 John Wetton 스타일이었던 Harald Bareth에 비해서는 새로운 보컬인 John Vooijs는 확실히 좀 더 말랑하고 팝적인 스타일의 노래를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내가 들었던 이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발라드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덕분에 Jimi Hendrix의 커버인 ‘Voodoo Chile’가 프로그레시브 메탈처럼 들릴 지경이니 이 정도면 그냥 Anyone’s Daughter식 AOR 앨범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밴드의 좋은 시절은 80년대 초반의 모습일 것이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데뷔작의 ‘Anyone’s Daughter’를 은근히 뒤튼 ‘She’s Not Just Anyone’s Daughter’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꼭 너네가 알고 있던 그런 모습만은 아니라는 밴드 본인들의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One World for You and Me’의 당혹스러운 힙합 사운드를 제외하면 나로서는 좋게 들었다.그런데 저 곡은 좀 많이 심각하긴 했다.

[Inakustik Musi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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