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illion의 역사적인 데뷔 싱글. 암만 Marillion이라도 싱글까지 어떻게 모으냐… 싶기는 한데, 어쨌든 이 싱글의 수록곡들은 정규반에 수록되지 않았던 곡들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Twelfth Night보다도 데뷔가 늦었던 이 밴드를 네오프로그의 대표주자로 만들어 준 건 이 될성부른 시작점이 무척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하드록 기운이 그래도 좀 있었던 덕분이었는지 네오프로그 싱글답지 않게 Kerrang!의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트리비아도 있으니 나름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네오프로그 얘기하면서 역사적 가치를 얘기하는 자체가 좀 무리일 순 있겠다.
밴드의 일반적인 스타일에 비해서는 확실히 차트를 의식했구나 싶은 직선적인 연주와 아마도 대처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Fish스타일로 묘사했을 가사가 의외의 화끈함을 선사하지만 그래도 이 싱글의 핵심은 B사이드의 ‘Grendel’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12인치 싱글을 꽉 채운 17분 40초의 Genesis를 여실히 의식한 연극적인 연주는 밴드 본인들은 나름 불만이 있었던 것 같고(밴드는 1983년 이 후 이 곡을 라이브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사실 그 정도로 과중하게 만들어 놓을 것까지도 없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Grendel’이 밴드의 가장 인기 많은 곡들 중 하나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걸 만들어 놓고 정작 정규 데뷔작에는 싹 다 빼 버리는 모습도 Marillion이 처음부터 얼마나 야심찬 행보를 보여주었는지를 보여준다.
밴드의 초창기 싱글들은 “The Singles ’82-’88” 박스셋으로 다 구제되었으므로 굳이 이 싱글을 사야만 하는 이유가 뭐냐면 좀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심플한 A사이드의 ‘Market Square Heroes’와 ‘Three Boats Down From The Candy’에 이어 이제 각잡고 들으라는 듯 ‘Grendel’을 B사이드에 실어놓은 완결성을 봐서라도 이 싱글 한 장 정도 갖춰놓을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상태 멀쩡한 판을 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럭저럭한 물건은 어쨌든 20유로 이하에서 구할 수 있으므로 싱글로서 가성비도 충분할 것이다. 하긴 애초에 25분 넘어가는 싱글이란 게 그리 흔치만은 않을거다.
[EMI,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