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분단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남자의 격정적 일대기라는 광고문구에서 어느 하나 당기는 구석을 찾아볼 수 없지만 책을 읽게 된 이유를 굳이 짚는다면 첫 번째로는 제목만 봤을 때 그레이엄 그린의 “제3의 사나이”스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겠다. 그런 면에서 무작위로 책을 폈을 때 등장한(그러니까 책의 개인적인 첫인상이나 마찬가지일) ‘월출’의 음주 장면은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대체 이름이 왜 월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명동 골목길 지하의 과묵한 바텐더가 음악을 틀어 주는 고급진 바에서 양주를 홀짝이며 여성들의 경계심도 풀어질 것을 기대하면서도 여자와 깊은 관계까지는 만들지 않는다는 무척 007스러운 설정으로 등장하는 사나이는 바에 앉아서 캪틴큐를 마신다. 다음날을 삭제시켜 준다는 그 술 맞다.

물론 ‘월출’은 비중은 무척 높지만 주인공은 아니고, 어쨌든 이 ‘격정적 일대기’에서 담당한 역할이 007스럽긴 하며, 이 책이 관통한다는 분단의 현대사는 6-70년대로 보이는만큼 바에서 혼술하는 남자가 먹는 술이 캪틴큐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겠고, 고된 현대사 속에서의 일상을 잊자면 캪틴큐만큼 적절할 술도 별로 없을 테니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결국 거칠게 요약하면 대단할 것까지는 없는,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군상들이 얽혀 있는 이야기이니 우리의 ‘월출’이 먹는 술이 캪틴큐가 아니라 시바스 리갈은 됐어야 했다고 할 이유도 굳이 없어 보인다. 잊을만 하면 우리의 현대사를 소재로 영화를 내놓는 충무로에서 참 영화로 만들기 좋아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역시 작가에게 시나리오 작업까지 시켜서 ‘대한민국 최고의 CF감독’에게 맡겨 영화화한다는 기사도 나온다.

말하자면 작가의 집필의도는 어두운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묵직함을 품으면서 동시에 문제적 시대상을 이용해서 재미까지 잡았다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스러운’ 평가를 받으려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도 들고, 그리 복잡하게 재지 않고 선 굵게 밀어붙이는 가운데 등장하는 장면들이 영화 문외한의 눈으로 보더라도 뭘 보고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했는지 알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리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캪틴큐 마시는 유사 007보다는 좀 더 ‘간지나는’ 인물이 등장해서 캪틴큐의 충격을 지워주지 않는다면 그 영화를 내가 볼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월출’이 틈만 나면 입고 나오는 츄리닝부터 벗겨주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곤란해 보인다.

그런데… 이 쯤 되면 사실 책의 문제라기보다는 초장부터 캪틴큐에 꽂혀서 계속 그 얘기만 하는 독자의 문제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러니까 문제는 결국 술이다, 술.

[박성신 저,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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