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뉴욕 출신 헤비메탈 밴드는 정규앨범으로는 이 한 장만을 남긴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시절 잘 풀린 밴드가 그리 많았겠냐마는 이들도 미국에서 활로를 찾기는 어려웠는지 독일에 가서 레이블을 찾기에 이르고,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곧 Vangelis 짝퉁처럼 생긴 프로듀서 겸 레이블 사장을 만나 이 데뷔작을 내놓게 된다. 문제는 저 Vangelis 짝퉁의 이름은 Ingo Nowotny였으며 그렇게 만난 레이블은 Metal Enterprises였다는 점이다. 그렇게 Black Virgin은 이제 그리 짧지만은 않은 헤비메탈의 역사에서도 아마도 한 손에 꼽힐 수 있을 정도로 얼척없는 모습을 보여줬던 레이블의 부끄러운 카탈로그의 한 켠을 채우게 되니 인생에 있어 한순간의 선택에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앨범이 Metal Enterprises의 악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NWOBHM의 기운 강한 파워메탈이지만 Iron Maiden류보다는 좀 더 어두운 스타일에 가까운데(이를테면 Angel Witch라든가) 아무래도 그런 A급들에 비해서는 테크닉이나 리프메이킹이나 조금은 모자라 보이지만 꽤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와 ‘건강한’ 스타일의 코러스, 이래저래 재지 않고 스래쉬풍으로 밀어붙일 줄도 아는 시원시원함을 갖추고 있다. ‘Heavy Metal Mad’ 같은 곡은 이 시절의 USPM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덕분에 이 앨범은 놀랍게도 Metal Enterprises 발매작이면서도 2018년에 소량이나마 재발매되는 기염을 토했으니 밴드로서는 불운했던 그 시절을 조금은 위로받았을지도? 물론 아직도 NWN!에서 팔고 있는 걸 보면 판매고는 꽤 곤란했겠지만 나로서는 꽤 즐겁게 들었다.

[Metal Enterprises, 1986]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