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ting Christ 내한공연이 있었다. 애초에 80년대부터 활동하기도 했고 데뷔작부터 헤비메탈의 기운을 강하게 머금은 음악을 연주했던 밴드이다보니 그저 강렬하게 달린다기보다는 드라마틱하면서도 ‘적당히 흥겨운’ 면모를 함께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서포트로 나온 Harakiri for the Sky가 딱히 에너제틱하다 할 만한 밴드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래 보였을 수도 있겠다. 각설하고.

그런 의미에서 간만에 들어보는 Rotting Christ의 첫 ‘데모’. 이 밴드를 들으면서 항상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Sakis는 “Triarchy of the Lost Lovers”까지는 왜 멀쩡한 본명을 놔두고 음악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아 보이는 Necromayhem 같은 이름을 사용했을까였는데, 블랙메탈은 커녕 그라인드코어를 연주하고 있는 이 데모를 듣자면 저 이름이 왜 튀어나왔을지를 좀 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9곡에 9분이 되지 않는 러닝타임은 지금의 밴드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Napalm Death의 스타일을 빼다박은 듯한 ‘Oxyacetilized Ozon’ 같은 곡을 듣자면 기타가 사고 싶어서 엄마 돈을 훔쳐서 샀다가 아빠한테 엄청 혼났다고 하던 Tolis 형제의 근본 없이 헝그리한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그래도 훗날의 거물 밴드의 면모가 슬슬 엿보이는 “Satanas Tedeum” 데모 이전에는 Rotting Christ도 그 시절 수많았던 별 희망 없어보이는 밴드들 중 하나처럼 보였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Darkthrone이나 이들이나 아니다 싶은 건 빨리 버리고 다시 준비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으니 이렇게 성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본받아야겠다… 싶긴 한데, 이런 음악 들으면서 왜 얘기가 이쪽으로 흐를까.

[Self-financed, 1988]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