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메탈계의 희대의 개그밴드 Vondur의 1998년 EP. 물론 멤버들은 그 커리어를 볼 때 개그를 상상할 수 없는 인물들이지만 이미 “Striðsyfirlýsing”로 블랙메탈 역사에 남을 유머를 선보인 이후였으니 이 EP에도 사람들이 개그를 기대하는 건 당연했던 일인데, 그럼에도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대개 개그가 암만 그래도 그렇지 지나쳤다… 라는 얘기였으니,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들어보기 전부터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규반도 아니고 EP에 뭔 짓을 해 놨길래 그런단 말인가?
앨범은 “Striðsyfirlýsing”의 수록곡 중 2곡의 재녹음과 1곡의 신곡, 4곡의 커버곡으로 되어 있는데, 저 재녹음 2곡이 가장 멀쩡한 블랙메탈이다. 그나마 블랙메탈의 전형에 가까운 ‘Kill Everyone’은 그렇다 치고 약 3분 동안 리프 하나만 주구장창 긁어대는 ‘The Raven’s Eyes Are as Mirrors of the Bottom of Satan’s Black Halls’는 누가 뭐래도 장르에 대한 조롱 (이라기보다는 자조)이렷다. Impaled Northernmoon Forest에 대한 북유럽 본토의 대답이라면 과장일까? 물론 두 밴드 모두 서로를 의식했을 리는 전혀 없지만 말이다.
문제는 나머지 곡들이다. Bathory나 Motley Crue의 커버곡이 신기할 정도로 스트레이트한 스타일이라 그래도 좀 낫다면 Judas Priest의 ‘Rocka Rolla’와 Elvis Presley의 ‘Love me Tender’ 커버는 청자에게 보기 드문 경험을 선사한다. 물론 가사는 원곡과 바꿔놓는(‘Love me Tender’에 ‘Fuckin’ whore’ 같은 가사가 있었을 리가) 세심함까지 보여주는지라 아마도 이 앨범을 돈주고 샀을 블랙메탈 애호가로서는 어디 가서 맛보기 어려울 유쾌함과 동시에 어느 한켠에 잘 안 감춰지는 본전 생각을 경험할 것이다. 아마도 앨범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미 여기까지 읽었다면 앨범에 대한 각자 나름의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지 않을까?
[Necropolis,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