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stilence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데스메탈 팬으로서 그렇다랄 수밖에 없고 이 밴드가 데스메탈의 역사에서 중요한 밴드라는 점에 이견이 있는 사람도 아마 ‘거의’ 없겠지만(뭐 투표마다 반대표를 던지곤 하는 반골은 있는 법이니까) 이 밴드의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데스메탈이라 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밴드가 데뷔했던 1988년은 스래쉬메탈의 힘이 살아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러니 이 앨범이 데스메탈의 전형보다는 차라리 스래쉬메탈과의 경계선에 가까워 보이는 음악을 담고 있는 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데스메탈 팬으로서 Martin van Drunen의 데뷔작을 데스메탈 앨범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입에서 잘 안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고로 내 기준에선 이 앨범은 엄연한 데스메탈이다. 물론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 말씀이 맞겠습니다만 일단 넘어가고.
밴드의 지적인 접근이 가시화된 “Testimony of the Ancients” 이전의 이들의 사운드는 테크니컬하지만 원초적인 형태의 데스래쉬에 가까운 편인데, 그런 면에서 가장 흔히 비교되는 앨범은 Sepultura의 “Schizophrenia”이지만, “Morbid Visions”의 블랙적인 면모가 사라지지 않은 “Schizophrenia”에 비해서는 “Malleus Maleficarum”이 좀 더 장르의 전형에 가까우면서 세련된 진행을 보여주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밴드는 ‘Parricide’나 ‘Subordinate to the Domination’같은 장르의 클래식과 ‘Chemo Therapy’ 같은 어쿠스틱 인스트루멘탈을 같은 앨범에 위화감 없이 담아낼 수 있었고, 이런 점은 밴드가 향후 이어 나가는 새로운 시도들을 약간은 예기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Commandments’의 (프로그레시브하지는 않지만)드라마틱한 구성은 앨범의 전체를 망라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동시에 “Testimony of the Ancients” 이후 Pestilence가 나아갈 방향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Roadrunner,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