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st Virginia Records는 꽤 웃기는 곳이다. 이름이야 웨스트 버지니아지만 카탈로그는 스래쉬와 데스로 점철된 이 독일 레이블은 Holy Moses나 Deathrow 같은 꽤 중요한 이름들을 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독일 메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라기엔 좀 부족해 보인다. 알고 보면 Morbid Music과 함께 Holy Moses의 그 부부가 만든 레이블인데, 이 곳도 1993년 이후 나온 앨범을 찾아볼 수 없는 거 보면 아마도 그 즈음 Morbid Music과 함께 사이좋게 망해버린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고 보면 이 분들은 한 개도 아니고 레이블 여러 개를 만들었다 한번에 다 말아먹어 버렸으니 과연 어떻게 비즈니스를 끌고 나갔던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 레이블이 그 짧은 기간 동안 내놓은 나름 견실한 카탈로그를 보면 어쨌든 보는 눈은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하긴 음악으로 밥 먹은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Traumatic Voyage는 이 레이블의 기간에 비해서는 그리 짧지 않은 카탈로그 가운데 가장 특이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시절이 시절이어서인지 Darkthrone풍 블랙메탈의 기운을 받아들인 독특한 데스메탈을 선보이는데, 당대의 데스메탈에 비해서도 확실히 ‘차가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편이기 때문에 이건 데스메탈이 아니라 그냥 데스메탈의 기운 강한 블랙메탈이라고 할 이도 많아 보인다(사실 그놈이 그놈이다 싶긴 하다). 그 자욱한 분위기가 노르웨이풍도 아니고 사실 약 냄새 강한 스타일인데, 덕분에 이 1992년의 음악을 DSBM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밴드의 개성만큼은 더없이 검증된 셈이다. 음질마저도 이런 류의 음악에 통상 기대하는 수준 이상으로 깔끔한지라 청자로서는 호오를 떠나서 확실히 지루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 엄청난 개성이 나로서는 사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Into the Pandemonium”을 많이 의식했구나(특히나 ‘Soulwinter’) 싶으면서도 사운드 샘플이나 적당히 스푸키한 키보드가 흐름을 갉아먹는 지점에서는 밴드가 너무 욕심이 많았구나 싶기도 하다. 하긴 밴드 입장에서는 장사는 어차피 망했으니 음악적 욕심이라도 확실히 챙겨가는 게 실속있는 선택이었을지도.
[West Virginia Records,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