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들어보는 앨범이긴 한데… 하필 그렇게 꺼낸 앨범이 Bad Religion의 자타공인 최고 패망작이라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뭔가 싶긴 하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계속 활동하면서 수많은 앨범을 내놓은 장르의 터줏대감이자 사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사례에 꼽힐 이 레이블 사장님 밴드의 앨범을 정작 내가 몇 장 들어보질 못했으니 보기에 좀 얄궂어도 어쩔 수 없다. 좋게 생각하면 이 거물 밴드의 정규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구하기 힘든 앨범이기도 하다. 모든 발매작들이 벌써 여러 차례 재발매가 되었지만 이 앨범만큼은 한 번도 재발매된 적이 없고 밴드 스스로가 공언하길 앞으로도 재발매될 일이 없다니 컬렉션 완성을 위한 마지막 키 같은 앨범이란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면 좀 나으려나? 하지만 Bad Religion은 정규앨범만 20장은 되는지라 그 컬렉션을 완성할 만한 이가 얼마나 될지는 또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그렇게 악명이 자자한 밴드의 이 두 번째 앨범은 옹골찬 펑크였던 데뷔작 이후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직선적이었던 리프를 걷어내고 어쿠스틱과 신서사이저 등을 더하여 전작과는 판이한 Bad Religion식 프로그레시브 록(!)을 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펑크 밴드였던 가닥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라 여전히 흥겨운 분위기와 귀에 잘 박히는 멜로디를 만날 수 있고, 방향은 다르지만 에너제틱하고 때로는 나쁘잖은 솔로잉까지 보여주는 기타(거의 Peter Frampton 수준)는 이 앨범을 꽤 화끈한 구석이 있는 아레나 록 스타일로 만들어낸다. ‘Billy Gnosis’의 묘한 흙내음은 Bufallo Springfield 같은 밴드의 스타일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때로는 지독한 1983년식 농담같이 느껴지는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의 전개와 꽤 변칙적인 곡을 끝내 소화하지 못하는 부실한 리듬 파트, 노래 잘 하는 거 뻔히 아는데 왠지 가끔은 삑사리까지 선보이는 듯한 보컬은 이 앨범의 악명을 뒷받침해 주는 만큼 이 앨범을 Bad Religion을 모르는 사람에게 들어보라고 추천은 못하겠다. 그냥 꿈도 희망도 없는 절대망작같은 일반적인 평과는 그래도 꽤 거리가 있는 앨범, 정도로 해두는 게 낫겠다. 잘 보이지도 않고 보여도 부틀렉이 아닌 한 가격도 무지막지하니 그 정도가 안전할 것이다.

[Epitaph,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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