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athrum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들어본 앨범…이지만 Barathrum과는 아무 상관없는 Absu의 데뷔작. 요새야 cascadian을 위시한 블랙게이즈도 이미 많이 등장했고, 언제부턴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들어봤다는 사람조차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Blasphemy 류의 war-metal을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미국 블랙메탈에 대한 관심도 확실히 예전보단 높아진 듯하지만, 블랙메탈이라면 당연히 스칸디나비아를 얘기해야 마땅하던 시절 미국 블랙메탈에서 몇 안되는 주목해야 할 밴드들에는 Absu의 이름이 빠지질 않았다. 블랙스래쉬는 아니지만 90년대 초반부터 활동한 여느 밴드들보다도 스래쉬하면서 오컬트한 사운드도 밴드의 개성이라 할 수 있겠다.

“Barathrum: V.I.T.R.I.O.L”도 그런 밴드의 초창기 음악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스래쉬의 기운이 덜하고 오히려 Nocturnus식 데스메탈을 좀 더 스푸키한 분위기로 풀어낸 듯한 음악을 들려주는 점에서 이 밴드의 다른 앨범들과도 확실히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 음악을 프로그레시브하다고까지 하긴 어렵겠지만 앨범은 1993년에 나오던 여느 블랙메탈 앨범에 비해서도 확실히 복잡하고 테크니컬한 전개를 보여주고, 때로는 싼티가 좀 과하다 싶긴 하지만 오페라틱한 면모까지 보여주는 ‘Descent to Acheron(Evolving to the Progression of Woe)’ 같은 곡은 이 밴드가 멜로디가 그리 다양하진 않지만 이를 변주해 가면서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처음부터 솜씨가 좋았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는 옛날 핫뮤직식 표현으로 Rotting Christ에 대한 (좀 뜬금없긴 하지만)미국의 대답 같은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키보드 얘기가 좀 거슬리는 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1993년이면 키보드 좀 썼기로서니 블랙메탈을 배신했네 어쩌네 소리 듣기는 많이 이른 시대였을 것이다. 하긴 데모 몇 장 나오긴 했다지만 이게 데뷔작인데 대체 뭘 변절하고 할 게 있을까.

[Gothic,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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