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프로그 밴드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Yes이겠지만 그럼 Yes풍의 심포닉 록 스타일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여기에는 그렇다는 답이 쉬이 나오지는 않는 편이다. 심포닉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이런 류의 음악을 Yes 레벨로 한 밴드는 당연히 없었고, 나름대로 갈고 닦은 기량을 보여준 밴드들도 많았지만 그저 풍부하다 못해 과다할 정도로 심포닉을 쏟아부을 줄만 알았던 함량미달의 사례들은 더욱 많았던 탓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프로그레시브의 부류들 중에서도 잘 하는 밴드와 못 하는 밴드의 실력차가 가장 극명한 분야도 아마 심포닉 프로그레시브가 아닐까 싶다. 하긴 우수사례가 Yes와 Genesis라면 이거 따라가기 참 어렵다.

그런 면에서 Epidaurus는 나름의 길을 찾아간 사례에 속한다. 독일 밴드여서 가능한 거겠지만 기타는 집어치우고 건반 주자 2명에 드러머도 2명을 내세운 변태같은 편성도 그렇고, 브리티쉬 심포닉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비교적 심포닉(하기보다는 사이키)하던 시절의 Tangerine Dream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음악은 확실히 드물다. 말하자면 Genesis풍으로 연극적인 심포닉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우주풍의 뒷배경을 깔면서 Tangerine Dream 식의 일렉트로닉함(굳이 비교하면 “Stratosfear”)이 등장한다고 할까? 비교적 평이한 심포닉의 A사이드에 비해 이 괴이한 전개의 B사이드가 앨범의 핵심일 것이고, 취향 많이 담아 말한다면 ‘Wings of the Dove’는 이미 가세가 기운 70년대 말의 크라우트록 중에서는 기억할 만한 한 순간이라 생각하며, 짐작하자면 Eloy는 이 앨범을 듣고 이후의 앨범들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 A사이드가 별로이냐? 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좋게 말하면 Annie Haslam의 목소리를 좀 더 가볍고 얇게 만든 듯한(나쁘게 말하면 덕분에 지나치게 앵앵거리는) Christine Wand의 보컬이 못내 귀에 걸린다. 보컬이 달랐다면 밴드의 역사도 달랐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Self-financced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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