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출신 프로그레시브 둠-데스 밴드의 2집(말하고 보니 프로그레시브란 얘기는 좀 과하긴 하다). 사실 파키스탄 출신이라 그렇지 이 앨범 자체는 국내 중고시장에서도 은근히 자주 보였고, Forgotten Silence 덕에 Epidemie라는 레이블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곳이었다. 말하자면 아니 무슨 수로/어째서 파키스탄 밴드 앨범을 구했는가? 라고 하기에는 꽤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말하고보니 왜 파키스탄 밴드 앨범을 구했는지 변명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라 이게 뭔가 싶다. 넘어가자.
음악은 꽤 독특한 스타일이다. 좋게 얘기하면 Opeth 류의 음악에서 리프를 좀 더 간단하게 바꾸고 둔중함을 강조하면서 다양(하다기보다는 잡다)한 요소들을 가미했다 할 수 있겠는데, 꽤 스케일 큰 연주를 들려주는 키보드와 평범한 리프에 비해서 확실히 빛나는 솔로잉이 더해지면서 나름의 개성을 보여준다. 특히 후자는… 이렇게 솔로를 할 수 있는 분들이 왜 리프는 재미없게 만들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빛나는 구석이 있다. 중간중간 나오는 옛날 호러영화 샘플이나 일렉트로닉스가 왜 굳이 등장해서 싼티를 더해주는가 하는 의문도 있지만 일렉트로닉스만 제외하면 “THOTS”에서 Forgotten Silence가 써먹은 방식과 비슷해 보이는 구석이 있고, 90년대 후반의 Sadist를 좋아했던 이라면 사실 꽤 친숙하게 여길 수도 있을 법한 스타일이다. ‘Nightbulb Angel’의 후반부에서 “Tribe”를 떠올릴 이가 아마도 나만은 아닐 것이다.
믹싱만이라도 좀 신경쓰고 드럼만 머신 말고 세션을 썼다면 지금의 중고매장 종신회원같은 입지보다는 훨씬 나은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저 감각적인 솔로잉들만으로도 중고음반값은 하고도 남을 것이다.
[Epidemie,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