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인더스트리얼로 한정짓지 않고 대중음악의 역사 전체를 보더라도 Throbbing Gristle만큼 말 그대로 ‘미친’ 밴드가 얼마나 될까 싶고, 그 중에서도 Genesis P-Orridege에 필적할 괴인이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몇이나 될까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거의 없다. 일단 생전에 남긴 작품들을 떠나서 개인으로서의 행보도 나 같은 범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고, 그럴까봐 많은 이들이 그들의 행보에 대해 달아놓은 수많은 설명과 주석들이 존재하지만 배움이 부족한 나로서는 많은 부분이 빈칸으로 남아 있으므로(이 부분에 대해 궁금하신 분에게는 Alexander Reed의 “Assimilate: A Critical History of Industrial Music”를 추천한다) 이런 얘기는 이쯤에서 줄이고.

Throbbing Gristle이 나름의 미션을 완료했다는 외침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Genesis P-Orridge가 새로이 내세운 밴드였던 Psychic TV는 그런 면에서 꽤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Aleister Crowley나 William Burroughs의 텍스트에 깊이 발 담근 테마는 Throbbing Gristle과 많이 닮아 있었지만 음악은 일반이 다가가기 훨씬 용이한 스타일로 바뀌어 있었다. Throbbing Gristle이 “20 Jazz Funk Greats”에서 보여준 지독한 농담을 좀 더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라도 한 듯 앨범은 꽤나 인상적인 애시드 포크를 보여주고, 때로는 60년대풍 팝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달달함까지 갖고 있다. ‘Messgae from the Tower’ 같은 곡에서 훗날의 네오포크를 연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 경향이 그렇게 본격적이지는 않다. ‘Ov Power’ 같은 곡에서 연상되는 것은 Der Blutharsch가 아니라 Gang of Four이니 장르 특유의 불온함이 무르익기 이전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NON 시절부터 불온하기 짝이 없는 스타일을 보여준 Boyd Rice는 그 평가를 떠나서 정말 대단한 문제적 인물인 셈이다.)

뭐, 이런 얘기들을 떠나서 이 앨범이 담고 있는 끝내주는 애시드 포크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충분해 보인다. ‘Caresse’는 아마도 인더스트리얼에 대한 일반의 편견을 부술 만한 곡이라면 첫손에 꼽힐 만한 사례일 것이다. 생전에 보여준 미친 행보만 아니라면… 독한 가사만 빼면 보기보다 부드러운 형님이었다고 소개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남겨둔 모습이 모습이다 보니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은 역시 품행을 조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Psychic TV 들으면서 얻을 교훈은 아닌 것 같으므로 얘기는 여기까지.

[Some Bizzare,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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