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재미없었는지 방금 TV로 보고 있었는데 제목도 기억이 안 나는 B급영화 어느 한켠에 나오던 무명의 조연과 닮은 덕에 간만에 들어보는 The Great Kat의 데뷔작. 솔직히 쉬지 않고 싱글이나 EP는 엄청나게 내놓고 있으나 1990년 이후에 딱히 의미있는 작품을 냈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하고, Dominatrix 컨셉트가 정신을 지배했는지 정말로 모든 인터뷰에서 일관된 이미지를 보여주다 못해 막 나가는 음악과 어우러져 바야흐로 헤비메탈 업계 최고의 ‘광년이’를 한 명 뽑는다면 가장 유력해 보이는 후보들 중 하나가 되었다(허나 쟁쟁한 후보들이 있으므로 수상은 장담할 수 없음).

뭐 그래도 알고 보면 줄리어드를 나온 전도유망한 바이올린 연주자 출신의 기타리스트가 메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Roadrunner와 계약하고 앨범을 내놓았으니 레이블의 기대가 없지 않았음은 능히 짐작이 되고(하긴 “Stars on Thrash” 컴필레이션에도 이름을 올렸다), 일단 기타 연주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기 때문에 Roadrunner가 아니라 Shrapnel로 갔다면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미 데뷔작 커버에서부터 넘쳐흐르는 똘끼를 넘어선 광기를 보면 Mike Varney가 절대 픽하지 않았겠구나 싶다. 맥락과 상관없을 정도로 자주 튀어나오는 솔로잉을 제외하면 기타 인스트루멘탈보다는 스피드메탈의 컨벤션을 변태적으로 뒤튼 스타일(이를테면 Sadistik Exekution이나 G.I.S.M이랄지)에 가까운 이 앨범이 Shrapnel 카탈로그에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전형적인 헤비메탈이나 기타 인스트루멘탈을 기대한 이라면 들을 필요가 전혀 없겠지만 이 데뷔작만큼은 그래도 나름의 재미를 찾기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기타가 워낙 종횡무진 활약하는지라 꽤 괜찮은 테크니컬 스래쉬처럼 들리는 부분도 여기저기 보인다(듣기 좋다는 얘기까진 아니므로 과한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만 직접 안 불렀다면 더 좋았겠지만 굳이 마이크를 잡는 모습이 끝내 아쉽지만 Yngwie를 생각하니 기타 좀 치는 분들은 원래 그런 경향이 좀 있나? 싶어서 일단 넘어간다.

[Roadrunner,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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