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메탈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The Gathering을 메탈 밴드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Anneke van Giersbergen 본인이야 항상 (꼭 이 밴드가 아니더라도) 메탈에 발을 담그고는 있었지만 정작 The Gathering은 메탈을 연주하지 않은 시간이 메탈을 연주한 시간보다 훨씬 길어져 버렸으니 그렇게 말하기는 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밴드의 가장 빛나는 시절은 “Mandylion”부터 “Nighttime Birds”까지일 테니, 이제는 ‘메탈 밴드 The Gathering’은 밴드 본인들보다는 밴드를 둘러싼 청자들의 욕망의 결과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무리까지는 아닐 것 같다.

밴드가 메탈을 포기한 이후의 앨범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 장이라면 아무래도 이 “Home”일 것이다. 이미 “How to Measure a Planet?”에서부터 시작된 새로운 스타일을 향한 밴드의 갈짓자 행보가 비로소 정리된 앨범이기도 하고, 기존의 ‘고딕’적인 분위기 대신 적당히 우울하지만 도회적인 – 이렇게 얘기하니 Anathema 생각이 나기도 한다 – 기운으로 빈자리를 메운다. ‘Shortest Day’부터 ‘Alone’까지의 앨범 초반 심플한 전개의 곡들에서 이러한 모습들이 두드러지는데, 어찌 보면 항상 어느 정도는 프로그레시브한 스타일에 닿아 있던 Anneke의 커리어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와 거리가 있는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래도 – 어쨌든 메탈은 아니지만 – 밴드가 여전히 흥미로운 리프를 만들 수 있음을 입증하는 ‘The Box’같은 곡이 있고, Anneke의 여전히 힘있는 보컬만으로도 기존 스타일을 좋아한 이들이라도 실망할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이 앨범을 아주 좋게 들었다.

[The End,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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