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ying Bride의 어떤 의미에선 역사적이라고 해도 좋을(아시아투어 자체가 30년만이라니) 내한공연이 있었다. 사실 이 밴드를 다른 둠-데스 밴드들과 구별짓게 해 준 면모는 바이올린과 Aaron Stainthorpe의 연극적이라고 해도 좋을 보컬이 만들어내는 어두우면서도 퇴폐와는 사실 거리가 있는 류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피셜 발표만 나지 않았지 Aaron와의 결별이 멀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못내 아쉽다. 각설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은 “Turn Loose the Swans”이지만, 그 시절의 묵직한 둠-데스와 밴드의 현재는 어쨌든 거리가 있고, 그런 경향의 시작점은 아마도 이 앨범일 거라고 생각한다. Aaron Stainthrope가 크루너로만 승부하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하고, Martin Powell의 바이올린과 건반이 감초 역할을 넘어서 곡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하다. ‘The Cry of Mankind’는 그런 밴드의 새로운 모습을 대변하는 곡으로서 장르의 클래식이 되었다. 말하자면 둠-데스인데 그로울링은 어디다 팔아먹고 클린 보컬로만 승부하는 많은 밴드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이 앨범을 듣고 그 길을 걷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Two Winters Only’ 같은 곡이 보여주는 빛나는 낭만은 이런 방향을 아무나 따라할 수는 없음을 재차 보여준다. 후대의 화끈한 맛도 없고 그저 징징거리기만 하는 아류 밴드들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지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의 내한공연은 ‘The Cry of Mankind’와 ‘From Darkest Skies’를 라이브로 들은 것만으로도 어쨌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관객 수를 보니 다신 안 올거 같긴 하지만 또 왔으면 좋겠다.

[Peacevill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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