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슬슬 2025년 올해의 앨범 같은 걸 많이들 뽑을 시절이 되었는데, 생각하니 금년에는 신보보다는 흘러간 앨범들을 더 찾아들었던 듯하여 2025년에는 뭐가 좋았더라? 하는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래도 확실하다 할 수 있는 건 이 정확한 정체 모를 밴드의 앨범을 올해의 앨범으로 뽑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블랙메탈 업계의 최고 화제를 꼽는다면 이 앨범을 빼놓고 넘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야흐로 AI의 시대, 커버의 저 쓸데없을 정도로 화사한 자태가 밈이 된 거는 물론이고 AI로 커버를 만들었네 어쨌네 하는 이슈몰이까지 성공했으니 이 앨범을 굳이 돈주고 사지 않았더라도 대체 이 웃기는 물건은 뭐냐 했을 이들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기믹은 이미 Këkht Aräkh가 “Pale Swordsman”으로 로맨틱 블랙메탈이라는 웃기는 화두를 던지면서 써먹은 모습이긴 하고, Këkht Aräkh나 이 밴드나 기본적으로는 ‘로맨틱’ 같은 레떼르가 붙어서 그렇지 꽤 로우파이한 블랙메탈(에 약간의 DSBM 테이스트가 묻은 스타일)의 전형을 따라가는 편이며, 얼척없는 커버를 보여주는 블랙메탈 밴드가 이전에 없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커버를 필두로 해서 잔뜩 어그로가 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건 블랙메탈이 아니라며 화낼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잘 만들었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수준미달이라 할 정도도 아니고, ‘Vortex’ 처럼 기대 이상의 극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곡도 있다. 그러니까 ‘filler’ 트랙이 좀 끼어 있지만 그래도 신경쓴 티는 분명한 블랙메탈 골방 프로젝트 중 중간 이상은 가는 사례…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CD를 돈주고 살 만하냐 하는 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음악만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앨범이라 하기는 충분할 것이다. Phantom Lure에서 열심히 판매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알아봐도 좋을지도.

[Self-financed, 2025]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