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d Buens Ende “Those Who Caress the Pale”

바야흐로 Ved Buens Ende의 첫 데모. 뭐 유명하지만 사실 이 밴드를 좋다고 듣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는 별로 찾아보진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훗날의 소위 포스트-블랙이나 또는 Deathspell Omega류의 음악의 맹아는 이미 이들이 다 보여줬던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는 이 데모와 정규반 “Written in Waters”만을 내고 문을 닫았고, Czral은 이 밴드에서 못다한 다양하고도 괴랄한 실험들을 Virus를 통해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원래부터 좀 뒤틀린 음악을 했지만 “The Black Flux” 이후 Virus가 갑자기 더 괴팍해진 이유는 이 밴드의 재결성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나버린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각설하고.

“Into the Pandemonium”의 Celtic Frost와 “Red”의 King Crimson이 기묘하게 어울려 있지만 그런 바탕 때문인지 이 밴드의 음악은 블랙메탈의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마냥 메탈릭한 편은 아닌데, 사실 앨범을 느슨하게 관통하는 블랙메탈의 색채를 뺀다면 이들의 음악은 때로는 얼터너티브처럼 들리는 구석도 있을 정도로 극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메탈헤드들이 듣기에는 좀 더 메탈릭한 이 데모가 “Written in Waters”보다 더 듣기 나을 수 있겠다. ‘Carrier of Wounds’는 “Written in Waters”에도 있는 곡이지만 격정이라는 면에서는 이 데모 쪽이 더욱 돋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연주는 “Written in Waters”가 더 정돈되어 있긴 하지만 뭐… 90년대 초중반 블랙메탈 데모 들으면서 연주 좀 느슨하다고 뭐라고 할 건 아니지 않은가. 무척 훌륭하다.

[Ancient Lore Creations, 1994]

Cantique Lépreux “Paysages polaires”

Matrak Tveskaeg를 퀘벡 블랙메탈의 가장 중요한 인사 중 하나라고 하면 좀 거짓말 같긴 하고… 그렇지만 어쨌든 현재 Forteresse의 핵심 멤버이고 (망하기는 했지만)Hymnes d’Antan을 운영했으며 Cantique Lépreux를 통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으니 퀘벡 블랙메탈의 나름 성공사례 중 하나로 꼽기는 문제 없어 보인다. 물론 성공사례래 봐야 경제적 성공을 과연 이뤘을까 한다면 아마도 아닐 것이기 때문에 이 얘기는 여기까지.

음악은 Forteresse를 알고 있다면 이미 익숙할 만한 블랙메탈이다. 다만 그보다는 리프는 좀 더 전통적인 헤비메탈의 모습을 보여주는 면이 있는데, 화려하진 않더라도 기타 솔로까지 들려주는 ‘Hélas…’ 같은 곡이 전형적인 예랄까? 하지만 거의 18분에 달하는 ‘Paysages Polaires’ 3연작을 듣자면 왜 퀘벡 블랙메탈을 사람들이 찾아들었을까 하는지에 대한 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Forteresse가 좀 더 선동적인 스타일이라면 Immortal마냥 휘몰아치는 북구의 칼바람을 그려내는 Cantique Lépreux가 전통적인 블랙메탈의 상에는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철저하게 차가운 풍경을 그려내기보다는 꽤나 서정을 드러내는 멜로디 덕분에 다른 동류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좀 더 듣기 편할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Mgla의 퀘벡풍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척 잘한다는 뜻이다.

[Eisenwald, 2018]

Triglav “When the Sun Is Rising Above the Earth”

CCP라는 레이블의 밥줄은 아무래도 서정을 앞세운 류의 메탈이지 않은가 싶은데(블랙이든 둠이든 간에) 그래도 간간이 등장하면서 대개 괜찮았던 스타일은 포크 바이브 강한 멜로딕 블랙메탈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Nerthus가 있을 것이고, Malnàtt도 좀 얼빠진 듯한 모습이 섞여서 그렇지 포크의 기운은 분명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름이야 처음 보지만 CCP에서 나온 서정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저 커버에서 예상되는 스타일은 꽤 분명한 편이다.

음악도 그런 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레이블은 네오클래시컬 무드에 어우러진 포크풍 정도로 홍보하고 있지만 클래시컬 얘기까지 하는 건 좀 과해 보이고 “The Taste of Victory” 시절의 Nokturnal Mortum을 떠올릴 구석이 있지만(하긴 이 분들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니) 또 그 정도로 흥겹지는 않은 류의 블랙메탈이다. 사실 포크풍이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는 평이한 리프의 블랙메탈에 가까운 편인데, 플루트가 비중은 적지만 곡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한데? 싶어서 찾아보니 플루트를 맡은 Anna Merkulova은 이미 Thunderkraft에서 은은한 포크풍을 충분히 경험하신 분이었다. 검증된 경력직이었던 셈이다.

인상적이랄 정도까진 아니지만 이 한 장 내고 망해버리기는 아쉬운 밴드일 것이다. 밴드를 이끌었던 Master Alafern는 어쨌든 Burshtyn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이 때만큼 포크적인 스타일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한 장쯤은 이런 걸 다시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CCP, 2006]

Abigor “Time Is the Sulphur in the Veins of the Saint – An Excursion on Satan’s Fragmenting Principle”

“Fractal Possession” 은 좋은 앨범이었다. 다만 ‘좋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이 밴드에게 불안했던 점이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Dodheimsgard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복잡해진 사운드는 밴드의 커리어를 통틀어 드물 정도의 급격한 변화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Dodheimsgard까지 간 마당에 Abigor는 이 다음에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시도할 것인가? 적어도 “Shockwave 666” 에서의 그 납득할 수 없는 사운드는 밴드가 전자음악 쪽에는 별로 재능이 없어 보인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앨범은 일단 그런 걱정은 비껴간다. 이따금 테크노 사운드까지 등장할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은 분명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명확히 공존하고 있다. 앨범의 리듬 파트는 밴드의 어느 앨범보다도 격렬하게 진행된다. 거의 Dillinger Escape Plan이나 Mr. Bungle 같은 이들을 생각나게 할 정도인데, 끊임없이 변화하긴 하지만 기타 리프는 블랙메탈의 그것이다. 비중은 적지만 신서사이저 또한 특이하다. 해먼드 오르간까지 등장하는 이런 식의 용례는 사실 블랙메탈보다는 70년대의 호러 컨셉트의 밴드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쯤 되면 앨범의 성패는 이 다양한 질료들을 어떻게 섞어내는지에 달려 있다.

밴드는 전작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전작이 테크니컬 데스의 방법론에 기댄 부분이 있었다면 이 앨범은 날카로운 트레몰로 리프가 주도하되 어느 정도 뒤틀려 있는 블랙메탈 스타일에 의존한다. 기본적으로 전작과 유사한 류의 ‘twist’ 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정교한 리듬과 무척이나 격렬한 베이스가 곡의 중심에서(이건 블랙메탈에서 꽤 드문 모습이다) 극적인 전개를 이끈다. Deathspell Omega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chaotic’한 분위기임에도 전개는 철저히 계산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소위 ‘아방가르드 블랙메탈’의 어느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되게 맘에 들었다는 뜻이다.

[End All Life, 2010]

Black Harvest “Abject”

Black Harvest는 꽤 생소한 이름이다. Kishor Haulenbeek이라는 이름만 봐선 국적을 짐작할 수 없는 미국 뮤지션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프로젝트인데, 이 분의 커리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utumn Tears의 “The Origin of Sleep” EP의 커버아트를 맡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넘쳐나는 듣보잡 밴드들 중 하나라고 소개하는 게 사실 더 맞을 것이다. 물론 수많은 골방 프로젝트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어쨌든 어엿한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매했지만, Oak Knoll이 사실 발매작의 퀄리티를 담보하는 이름은 아니긴 하므로 그 점을 신경쓴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각설하고.

“Abject”는 밴드가 Oak Knoll을 떠나 내놓은 첫 앨범인데,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하는 모양이지만 피지컬로 앨범을 내놓은 건 이게 마지막이므로 이 앨범 이후에는 활동이 변변찮다고 해도 좋을지도? 그런데 이 1인 프로젝트의 음악이 꽤 수준이 높은 테크니컬 blackend-death라는 건 꽤 의외다. 굳이 비교하자면 Extol이 블랙메탈의 기운을 좀 더 머금으면 될 법한 스타일인데, 그런가 하면 ‘The Beggar’s Song’ 같은 곡은 소시적 Opeth마냥 어쿠스틱한 연주로 분위기를 가져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한 10년만 일찍 나왔으면 대단한 명작… 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작이란 정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레이블이 있는 게 낫다고 전작보다 확실히 밋밋해진 녹음이 좀 아쉽지만 좋은 앨범이다.

[Self-financed,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