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örhead “1916”

Phil Campbell이 지난 13일에 돌아가셨다는데 이제야 이 소식을 접했으니 확실히 어디가서 메탈 열심히 듣고 다닌다는 소리는 못 할 팔자다. 이 앨범을 덕분에 간만에 들어보고 있으니 내가 Motörhead에 많이 소원했다는 생각도 새삼 든다. 하긴 Motörhead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주변에 널렸고 대개는 나로서는 비교할 수 없어 보일 정도로 강렬한 빠심을 과시하니만큼 나로서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 각설하고.

Motörhead만큼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기복이 별로 없는 밴드도 드문 편이긴 하지만 생각하면 Phil Campbell이 참여한 시절은 사실 Motörhead의 보통 얘기하는 전성기와 딱 겹치지는 않는 편인데, 그래도 Phil이 참여한 Motörhead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을 꼽는다면 이 앨범이다. 일단 국내 라이센스된 Motörhead의 몇 안 되는 앨범들 중 하나일 것이고, “Another Perfect Day” 같은 앨범과는 달리 CD로도 찍어준 덕에 그래도 돈없는 학생이 노려볼 만한 물건이었다. Motörhead의 앨범을 사면서 음악이 별로일까 걱정할 이유는 별로 없었으므로 돈만 있다면야 충분히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만난 앨범은 Motörhead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만큼 다양한 스타일(이래봐야 전부 Motörhead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긴 하지만)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16’에서 무슨 루이 암스트롱마냥 신서사이저 연주에 거친 목소리로 노래하는 Lemmy의 모습은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앨범 마지막에서 주제에 걸맞게 병사들을 위한 Motörhead식 장송곡을 넣어놨다고 이해하면 넘어가는 데는 무리는 없다. 그런가하면 Motörhead식 로커빌리를 보여주는 ‘Going to Brazil’이나, 메탈의 리프가 얼마나 단순해질 수 있는지(그리고 Ramones가 얼마나 훌륭한 리프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보여주는 ‘Ramones’, 밴드를 상징하는 곡들 중 하나인 ‘Make My Day’ 같은 곡이 있다. 이제는 이 앨범을 만든 4인조가 모두 돌아가셨다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명복을 빈다.

[WTG, 1991]

Peste Noire “La sanie des siècles – Panégyrique de la dégénérescence”

이 앨범이 20년 됐다기에 간만에. Peste Noire가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NSBM 밴드임은 분명하고, 이제는 Blackgaze를 넘어 블랙메탈 출신 뮤지션들 중 최고의 스타 중 하나가 되어버린 Neige로 하여금 이 앨범에 참여한 것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게 만들 정도로 노골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이 앨범이 NSBM으로 분류되는 앨범들 중 최고의 결과물 중 하나로 꼽힐 만하며 적어도 21세기에 NSBM이 아니라 블랙메탈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이만한 앨범이 얼마나 나왔는가 하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21세기에 나온 많은 NSBM 앨범들이 있지만 이 앨범만큼 진짜 ‘위험한’ 앨범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NSBM 앨범들은 일단 형편없는 내용물 덕분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보기도 전에 CD 랙으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이 앨범이 보통의 NSBM처럼 오로지 증오만을 분출하는 흔해빠진 블랙메탈이 아니라 크리스틴 드 피장의 텍스트와 클래시컬한 무드(여기에는 어쿠스틱 소품들이 꽤 큰 역할을 한다)를 꽤 거칠지만 명료하게 녹음된 블랙메탈로 뒤틀면서 보들레르의 텍스트 등의 힘을 빌린 퇴폐성을 얹어내면서 나름의 드라마틱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음악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요목조목 들여다보면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멋진 멜로디의 어쿠스틱 소품들도 그렇지만 이만큼 솔로잉이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특히나 ‘Laus Tibi Domine’) 블랙메탈 앨범은 정말 드물 것이다.

덕분에 Peste Noire라는 이름만 떼어놓고 본다면 NSBM이 아니라 평화로웠던 어느 프랑스 마을의 정경이 흑사병으로 불타오르는 모습을 소재로 했을법한 블랙메탈 오페라(라기는 카바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첫 데모 제목을 “Aryan Supremacy”로 짓는 미친자들의 앨범을 들으면서 NSBM 얘기를 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윤리성을 잃어버린(하지만 그 비윤리성을 예술의 이름으로 감춰낸) 예술 작품이 어디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얘기할 때 중요한 사례로 써먹을 수 있을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새삼 좀 무섭다.

[De Profundis Éditions, 2006]

B.S.T. “Die Illusion”

바야흐로 BTS를 선봉으로 삼아 케이팝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침튀기며 외치고 있는 판에 BTS와는 아마도 발톱의 때만큼도 관련없을 이 괴이한 밴드는 이름부터 뭔가 눈에 걸린다. BTS야 방탄소년단의 약자라고 하는데 그럼 B.S.T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니 독일어로 ‘Blut, Schweiß, Tränen’의 약자라고 한다. 즉 피, 땀, 눈물 되겠다. 쓸데없는 혐의가 점점 짙어지니 이름 얘기는 이쯤에서 넘어가자.

그래도 이 함부르크 출신 밴드는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의 둠메탈을 들려주고 있다. 굳이 비교하면 Solitude Aeternus 스타일의 클래식 둠 스타일인데, Heiko Wenck의 보컬이 사실 둠메탈에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솔직히 하드코어 불러야 할 목소리 같음)간혹 깬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있지만 묵직한 리프에 솔깃한 멜로디를 실어낼 줄 아는지라 장르의 팬이라면 만족하기 충분해 보인다. 특히나 어쿠스틱 인트로에서 이어지는 극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Die Lüge’는 Candlemass와 Solitude Aeternnus의 좋았던 시절(물론 파워메탈 물은 좀 덜어내야 한다)을 연상케 한다. 물론 Messiah 같은 보컬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세상이란 게 한 술에 배부르긴 가히 어렵기 마련이렷다.

이 데뷔작 이후에도 띄엄띄엄이지만 앨범을 계속 내고 있다니 기억할 이름이 또 늘었다.

[Self-financed, 2013]

Coroner “Dissonance Theory”

Megadeth를 표현할 때 흔히 나오곤 하는 용어들 중 하나가 ‘intellectual thrash’라는 것이었는데, 일단 ‘intellectual’이 장르명에 들어갈 만한 표현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지적인 스래쉬메탈 밴드를 고른다고 한다면 Megadeth보다는 Coroner 같은 밴드가 그 정답이지 않을까? 사실 “Rust in Peace” 같은 앨범이 아니었다면 Megadeth에 대한 이미지는 – 전형적인 스래쉬 밴드도 아니기는 하지만 – 그런 ‘지적인’ 메탈 밴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한다면 밴드의 정점은 아닐지언정 때로는 아방가르드한 면모까지 느껴지던 “Grin” 같은 앨범의 음악이 지적인 밴드 컨셉트에는 더 맞을 것이다. 물론 그건 스래쉬 밴드에게 반드시 장점은 아닐 수 있고, 특히 전작(“Mental Vortex”)에서 스타일적인 혁명이랄 것까지는 없겠으나 스래쉬의 공격성과 실험적인 면모를 거의 정점에 가깝게 엮어낸 밴드에게는 더욱 그렇다.

예상도 못 하다가 받아든 이 32년만의 신보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 밴드의 날카로움이 놀라울 정도로 빛이 바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Grin”부터 슬슬 강조되던 그루브감은 이번 앨범에서도 상당히 전면에 드러나 있지만 “Grin”보다는 그 이전의 앨범들에 가까울 정도의 빠른 템포와 공격적인 리프가 있으며, 리프 자체는 익숙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뮤트를 이용해 그루브와 동시에 사이사이의 뒤틀림을 만들어내는 모습 – 아마도 djent 스타일을 의식했을 법하다 – 을 보고 수없이 등장했고 지금은 대개 많이들 한풀 꺾인 후대의 리바이벌 스래쉬 밴드들에 비해서도 훨씬 세련되고 공격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돌아온 탕아… 마냥 표현하면 과장인가? 특히나 ‘Transparent Eye’의 코드 보이싱, ‘Renewal’의 프로그레시브한 전개를 보자면 이 분들 대체 왜 그리 오래 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히 최고의 복귀작이란 말을 쓸 수 있어 보인다.

참고로 2CD 버전에는 1986년의 “Death Cult” 데모가 보너스로 들어 있는데, 일찌기 No Remorse에서 재발매되었고 사실 부틀렉으로는 꽤 흔하므로 들을만한 분들은 거의 들어보셨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쪽을 권한다. Tom G. Warrior가 보컬을 잡은 Coroner를 언제 들어보겠는가? 이래저래 알짜배기인 셈이다.

[Century Media, 2025]

Budgie “Power Supply”

Budgie를 되게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편이고 이 밴드가 후대의 메탈 밴드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음도 분명하지만 이 밴드를 걸출한 ‘헤비메탈 밴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밴드를 보통 메탈 밴드라고 부르곤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밴드를 아는 이들의 상당수는 애초에 Metallica 덕분에 이 밴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역시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난 훗날의 밥벌이를 걱정하지만 딱히 아이디어는 없고 해서 다음주도 근근이 살아남을 것을 다짐하곤 하는데 쓸데없는 얘기는 이쯤하고.

1980년의 Budgie도 (뭐 나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만)어찌 보면 비슷한 것이 이미 밴드는 “Bandolier” 이후부터는 슬슬 시절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들어오고 있었고, 펑크의 폭발 이후에는 더욱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었으며, 그렇다고 밴드가 본격 헤비메탈이었던 적도 딱히 없었던 듯하니 NWOBHM 딱지를 붙이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나쁘진 않았지만 성공적이지도 않았던 “Impeckable”를 마지막으로 탁월한 리프메이커였던 Tony Bourge도 떠나버렸다. 말하자면 Burke Shelley도 밥줄을 걱정하는 이 블로그 주인장마냥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밴드가 유지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지는 Deep Purple의 멤버들이 잘 보여주고 있었으니 골머리 썩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여기서 Budgie의 선택은 본격적으로 NWOBHM에의 합류였고, “Power Supply”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덕분에 밴드의 기존 프로그레시브하고 서사적인 면모를 기대한 이들은 아마 실망스러웠을 것이고, 어찌 보면 “British Steel”의 열화판마냥 대부분의 곡들이 유사한 모티프와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점도 그리 기껍지는 않다. 하지만 ‘Forearm Smash’의 강렬한 리프와 Judas Priest와 이제는 보컬까지 비슷하게 가는 ‘Hellbender’, 아이러니하게도 밴드 기존의 분위기가 살아있지만 제목만큼은 헤비메탈 찬가가 돼버린 ‘Metal Revolution’ 등 모든 곡이 당대의 어느 메탈 앨범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힘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이 앨범을 Budgie의 최고 걸작으로 꼽을 이는 아마 없다시피하겠지만, 어쨌든 이젠 헤비메탈의 숨겨진 구루처럼 대접받는 이 밴드의 가장 메탈적인 앨범은 누가 뭐래도 “Power Supply”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Dream Theater 내한공연을 또 못 가고 집에서 밥줄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에 굳이 이 앨범을 한번 더 찾아 듣는다. 결국은 모두들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게 이 앨범에 대한 주된 감상이렷다. 그런데 이게 앨범 리뷰가 맞나?

[Active,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