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achia “From Behind the Light”

이 노르웨이 심포닉블랙 밴드는 1999년에 이 한 장을 내고 망해버렸다가 2009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없이 앨범을 서너 장 더 발표했는데, metal-archives의 내용에 의하면 지금은 또 소리없이 망한 거로 예상된다. 말하자면 음악의 만듦새를 떠나서 딱히 주목받을 일은 없었던 밴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Velvet Music에서 나왔던 이 앨범만은 주변의 꽤 여러 사람들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한 것이 1999년이면 Hammerheat Prod.도 살아 있었고 노르웨이 블랙메탈이 끝나지 않은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프랑스 레이블에서 루마니아 기믹(그런데 정작 드라큐라와는 별 상관이 없었던)으로 앨범 내는 노르웨이 밴드는 자체로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음악은 그리 특이할 건 없다. 멜로디 분명하고 조금은 가볍지만 풍성하게 리프를 뒷받침하는 키보드가 돋보이는 미드템포의 블랙메탈이 주가 되는데, 녹음 탓인 면도 있지만 두드러지는 키보드 덕에 의외로 생각나는 밴드는 Summoning이지만, 중간중간 배어나는 포크 바이브에서는 Thy Serpent 생각도 난다. 하지만 전형적인 블랙메탈보다는 낮게 그르렁거리는 그로울링이 주가 되는 보컬과, 때로는 직선적이다 못해 펑크풍으로 밀어붙이는 리프(거의 Ramones 수준)를 보면 Thy Serpent만큼 긴 곡을 자연스럽게 밀고 나갈 능력이 이 밴드의 강점은 아니었겠구나 싶다.

그래도 어쿠스틱한 도입부로 시작해 이내 꽤 준수한 심포닉을 보여주는 ‘Fullmåne over Fagaras’ 같은 곡을 보면 나름의 역량은 충분했던 밴드임은 분명하다. 훗날 “Shunya”에서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오케스트레이션의 맹아는 이미 처음부터 살아 있었던 셈이다. 별로 빛볼 일 없었고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지만 꽤 인상적인 시작이었다.

[Velvet Music, 1999]

Black Sabbath “Vol. 4”

Black Sabbath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한 장 더. Ozzy 시절 Black Sabbath의 6장의 앨범들 중 무엇을 고르느냐? 의 문제는 결국 이 앨범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한 Black Sabbath의 프로그 워너비 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앨범이 못 나왔다기보다는 “Master of Reality”에서 1년, “Paranoid”에서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밴드의 음악이 이렇게 나왔으니 이거 뭐지 싶은 이들도 꽤 많았을 것이다. 그나마 나처럼 Black Sabbath를 동시대로 접하지 못한 이들에겐 어차피 다 같이 클래식일 테니 상관이 없겠지만, 밴드의 과거를 직접 지켜봤을 (내 주변의)아재들에게 이만큼 인기 없는 Black Sabbath의 앨범도 별로 없었다. 이런 변모의 원인에 대해서는 (약을 포함해서)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은 듯하나 어쨌든 좋던 나쁘던 간에 이 앨범이 밴드의 터닝 포인트였음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헤비해졌던 밴드의 초창기 헤비메탈에 별 정이 없고 적당히 낭만을 곁들인 부드러운 전개의 발라드(‘Changes’)가 앨범에 등장했다. 물론 이전의 앨범에도 발라드는 있었지만(‘Solitude’나 ‘Planet Caravan’이나) 어쨌든 앨범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에 맞춰가는 전작들의 곡에 비해서는 확연히 구분되는 전개의 이 발라드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에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Black Sabbath의 팬들은 굳이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Black Sabbath의 초창기를 통틀어서도 확연히 이질적으로 보이는 인스트루멘탈 ‘Laguna Sunrise’도 어떻게 앨범에 들어갔을지 나는 아직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전작들의 히트곡을 의식했음이 역력해 보이는 히트곡 ‘Snowblind’나 ‘Supernaut’, ‘St. Vitus Dance’ 같은 곡이 있으니 헤비메탈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Wheels of Confusion’의 블루지한 리프가 훗날의 슬럿지를 연상케 하는 양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이 앨범이 후대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하긴 이 때의 Black Sabbath는 똥반을 낼 수 없는 밴드이긴 했다.

[Vertigo, 1972]

Black Sabbath “Sabbath Bloody Sabbath”

Ozzy Osbourne이 죽었다. 퇴근길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었는데 평소에 메탈도 잘 안 나오는 방송이 Ozzy 특집으로 방송시간을 채워버리는 거 보니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대단한 분이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워낙에 인상적인 활동상을 많이 남겨놓은지라 Ozzy가 참여한 앨범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지만, Randy Rhoads를 내세운 “Blizzard of Ozz”나 Black Sabbath의 마일스톤인 “Black Sabbath”나 “Paranoid”를 고르지 않는 변태같은 취향의 소유자라면 아무래도 “Sabbath Bloody Sabbath”를 고르지 않을까 하는 게 사견. 어찌 됐건 저 두 장의 앨범들이 헤비메탈 밴드로서 Black Sabbath의 오늘의 입지를 대변하는 사례라면 Ozzy 시절의 앨범들 중 이 밴드가 메탈 밴드 다우면서 최상의 독창성을 보여준 건 이 앨범일 것이다. ‘Spiral Architect’의 백파이프처럼 잘 알려진 사례도 있지만, ‘Looking for Today’의 Tony Iommi의 플루트에 이어지는 강력한 리프와 Ozzy의 건강박수… 처럼 다른 앨범이었다면 어려워 보이는 모습들을 이 앨범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래도 Bill Ward의 재즈적인 드러밍과 멋진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A National Acrobat’과 Black Sabbath식 프로그레시브 록을 보여주면서 Rick Wakeman이 아들의 훗날 일자리의 바탕을 깔아준 ‘Sabbra Cadabra’가 가장 인상적일 것이다. 말하자면 Black Sabbath가 메탈 밴드이면서도 다른 동시대의 브리티쉬 하드록 밴드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앨범일 것이고, Ozzy 본인도 업계 최고의 Beatles 팬 답게 메탈 말고도 다른 류의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사례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Black Sabbath와 Ozzy Osbourne이라는 인물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데에는 이만한 앨범이 없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Vertigo, 1973]

Pantera “Cowboys from Hell”

이 앨범이 다가오는 24일이면 35주년이라기에 간만에. 이 정도면 이런저런 매체들에서 얘기 좀 나오려나 싶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비평(을 넘어 뮤직 저널리즘)의 위기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가 돼버린 지금인만큼 현재진행형도 아닌 Pantera 얘기를 그냥 넘어간대도 이상할 것까진 없을 것이다. 24일까지 조금은 남았으니 이런 건 설레발이라고 치고 본론으로.

생각해 보면 슬슬 머리가 굵어지며서 적어도 Pantera의 음악을 스래쉬라기보다는 그루브메탈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얘기할 즈음부터는 Pantera를 잘 듣지 않았고, 밴드도 슬슬 “Reinventing the Steel”의 아쉬운 성과를 뒤로하고 문닫을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Dimebag Darrell의 날카로운 리프는 스래쉬메탈에 붙여놔도 밀릴 것이 없었으나(이건 Exhorder와 비교하면 더 분명할 것이다) 트리키하고 그루브한 전개와 멤버들이 내세운 카우보이 기믹은 텍사스 출신답게 서던 록의 기운을 풍겼다. 빠른 곡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이 밴드는 딱히 스피드에 방점을 둔 밴드가 아니기도 했으니 기존 스래쉬의 팬이라면 ‘Cemetery Gates’를 듣고 남들이 좋다거나 말거나 이게 뭐냐는 반응을 꽤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나도 그렇고 지금은 Pantera를 듣지 않는 많은 이들도 한때는 ‘Psycho Holiday’나 ‘Domination’을 듣고 헤드뱅잉까진 아니더라도 고개를 까딱였을 기억은 남아 있지 않을까? 헤비메탈이 기본적으로 강력한 리프를 앞세운 사나이들의 땀내나는 음악이라 한다면 적어도 1990년 차트를 스쳐갔던 많은 밴드들 중 저 명제에 가장 어울리는 건 아마도 Pantera였음은 맞아 보인다. “Vulgar Display of Cowboys”의 당혹스러운 추억 때문에라도 이따금 찾아듣게 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저 때 저런 거 듣고 있어서 계속 솔로였나 싶기도 한데 거울 보니 음악 탓할 건 아닌 것 같아 이만 넘어간다.

[Atco, 1990]

Tyrannic “Tyrannic Desolation”

생긴 건 블랙스래쉬나 데스래쉬 밴드처럼 생겼으나 때로는 (Black Sabbath풍의)둠이래도 괜찮을 만한 분위기의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이 호주 듀오(그런데 왜 썸네일 사진들은 다 3명으로 돼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도 드디어 나름의 성과를 거뒀는지 고국의 Seance Records를 벗어나 요새 이 장르에서는 잘 되는 집들 중 하나인 Iron Bonehead에 몸담고 앨범을 내놓기 시작했다. 300장 한정이라니 레이블에서는 그렇게 큰 기대는 없는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지만 찾아보니 이 레이블에서 CD를 300장 이상으로 찍은 경우도 꼭 많지만은 않으므로 이런 건 쓸데없는 걱정일 것이다. 각설하고.

특이한 점은 이런 류의 둠 스타일을 받아들인 밴드라면 헤비메탈 기운 강한 리프를 보여주는 게 당연해 보이고 이들도 그렇긴 하지만 좀 더 ‘chaotic’하게 뒤틀린 형태의 리프를 내세운다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Deathspell Omega 닮았다 할 정도는 아니고 한창 시절 Master’s Hammer 같은 밴드들이 그랬듯이 체코 블랙메탈이 보여줬던 적당히 에스닉하면서도 변칙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고, 오히려 이전작들에 비해서 헤비메탈의 기운이 옅어진 덕에 그런 뒤틀린 분위기는 더 짙어 보인다. ‘Only Death Can Speak My Name’처럼 Cathedral 풍 강한 곡이 있긴 하지만 여태까지의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블랙메탈에 기울어진 음악이랄 수 있다.

그래도 이런 류의 블랙메탈이 보여줄 수 있는 적당히 오컬트하고 ‘병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보여주는 편이므로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사실 그런 면에서는 통상적인 블랙메탈보다는 Mortuary Drape 같은 밴드의 팬에게 더 와닿을 수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300장을 찍은 이유는 레이블이 큰 기대가 없었나보다 쪽으로 생각이 기울지만 그래도 잘 됐으면 좋겠다.

[Iron Bonehead,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