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UK) “Pray for War”

노르웨이 Virus 얘기 나온 김에 이 밴드도 간만에. Virus가 흔히 밴드명에 쓰이는 단어는 아닌 것 같긴 한데… metal-archives에 의하면 의외로 Virus라는 이름의 무명 메탈 밴드들이 많아서 살짝 놀랐다. 어쨌든 많은 Virus들 중에 그래도 나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례라면 저 노르웨이 Virus와 이 영국 스래쉬 밴드가 유이하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크게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각설하고.

음악은 그 노르웨이 Virus와는 거의 대척점마냥 느껴지는 직선적이고 거친 스래쉬메탈을 담고 있다. 애초에 이 레이블 자체가 대개 이렇게 무작정 달리는 B급 스래쉬를 주로 내놓는 곳이긴 한데(예외도 물론 있다. 이를테면 Prophets of Doom이나 Necrosanct 같은) “Power from Hell” 시절의 Onslaught에 감흥이 깊었는지 1987년에 이 정도로 펑크풍 짙은 스래쉬를 내놓는 사례는 많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곡명들도 그렇고 매드맥스마냥 아마도 핵전쟁 이후 대충 망해버린 세상의 피카레스크를 그려내려는 것이 밴드의 의도였나 싶은데, 소위 ‘primitive thrash’라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라면 만족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냥 조악한 B급 스래쉬처럼 넘어가버릴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TNT(Thermo Nuclear Thrash)’의 코러스에서 스래쉬보다는 Oi! 펑크의 그것이 더 생각난다는 점이 모두에게 미덕은 아닐 것이다.

보니까 Voivod의 “War and Pain”에 대한 영국의 대답이다라는 말도 많이 보이던데… 뭐 Voivod의 거친 시절이니 하는 얘기려니 싶지만 Voivod에 비할 정도는 절대 아니니 주의가 필요하다. 하긴 이 밴드를 알고 찾아 들을 이라면 그럴 염려는 별로 없긴 하겠다만.

[Metalworks, 1987]

Virus(NOR) “The Agent That Shapes the Desert”

Ved Buens Ende를 들은 김에 간만에 Virus까지. 대개 얘기하는 것이 이 Virus가 Ved Buens Ende의 사실상의 후신 밴드라는 것인데, 음악이야 어쨌건 밴드의 핵심이었던 Czral이 재차 중심이 되어 만든 밴드이고, Czral과 함께 Virus를 시작한 멤버들이 Ved Buens Ende 재결성에 참여했던만큼 그게 괜한 얘기랄 것도 아니긴 하고, 확실히 “The Black Flux” 같은 앨범을 듣고 “Written in Waters”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신기할 얘기긴 하다.

그런 면에서 Virus가 Ved Buens Ende의 그림자를 슬슬 벗어나기 시작한(벗어났다기보단 그림자 주변을 맴도는 데 가깝지만) 앨범은 “The Agent That Shapes the Desert”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실 메탈적이지 않은 부분도 많은 Ved Buens Ende였지만, Virus의 이 앨범에 와서는 이제 블랙메탈의 기운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Written in Waters”의 흔적이 많이 묻어나는 걸 생각하면 꽤 의외인 모습이기도 한데, 그런 면에서 Czral은 Ved Buens Ende나 Virus의 음악을 블랙메탈의 범주에서 얘기하는 걸 별로 원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 앨범에 와서는 Opeth류나 보통 ‘프로그레시브’하다는 메탈 음악에서 등장하는 솔로잉이나 드라마틱한 구성 등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에너제틱한 리듬감을 갖고 있지만 꽤나 건조한 구석이 있는 분위기이다. 그런 면에서는 “A Pleasant Shade of Grey”를 들었을 때의 당혹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Dead Cities of Syria’ 같은 곡의 프로그레시브는 비교적 익숙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고, ‘Chromium Sun’의 은근히 댄서블한 디스코 비트는 장난기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앨범을 여러 번 들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음악이다.

[Duplicate, 2011]

Ved Buens Ende “Those Who Caress the Pale”

바야흐로 Ved Buens Ende의 첫 데모. 뭐 유명하지만 사실 이 밴드를 좋다고 듣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는 별로 찾아보진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훗날의 소위 포스트-블랙이나 또는 Deathspell Omega류의 음악의 맹아는 이미 이들이 다 보여줬던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는 이 데모와 정규반 “Written in Waters”만을 내고 문을 닫았고, Czral은 이 밴드에서 못다한 다양하고도 괴랄한 실험들을 Virus를 통해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원래부터 좀 뒤틀린 음악을 했지만 “The Black Flux” 이후 Virus가 갑자기 더 괴팍해진 이유는 이 밴드의 재결성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나버린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각설하고.

“Into the Pandemonium”의 Celtic Frost와 “Red”의 King Crimson이 기묘하게 어울려 있지만 그런 바탕 때문인지 이 밴드의 음악은 블랙메탈의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마냥 메탈릭한 편은 아닌데, 사실 앨범을 느슨하게 관통하는 블랙메탈의 색채를 뺀다면 이들의 음악은 때로는 얼터너티브처럼 들리는 구석도 있을 정도로 극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메탈헤드들이 듣기에는 좀 더 메탈릭한 이 데모가 “Written in Waters”보다 더 듣기 나을 수 있겠다. ‘Carrier of Wounds’는 “Written in Waters”에도 있는 곡이지만 격정이라는 면에서는 이 데모 쪽이 더욱 돋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연주는 “Written in Waters”가 더 정돈되어 있긴 하지만 뭐… 90년대 초중반 블랙메탈 데모 들으면서 연주 좀 느슨하다고 뭐라고 할 건 아니지 않은가. 무척 훌륭하다.

[Ancient Lore Creations, 1994]

Cantique Lépreux “Paysages polaires”

Matrak Tveskaeg를 퀘벡 블랙메탈의 가장 중요한 인사 중 하나라고 하면 좀 거짓말 같긴 하고… 그렇지만 어쨌든 현재 Forteresse의 핵심 멤버이고 (망하기는 했지만)Hymnes d’Antan을 운영했으며 Cantique Lépreux를 통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으니 퀘벡 블랙메탈의 나름 성공사례 중 하나로 꼽기는 문제 없어 보인다. 물론 성공사례래 봐야 경제적 성공을 과연 이뤘을까 한다면 아마도 아닐 것이기 때문에 이 얘기는 여기까지.

음악은 Forteresse를 알고 있다면 이미 익숙할 만한 블랙메탈이다. 다만 그보다는 리프는 좀 더 전통적인 헤비메탈의 모습을 보여주는 면이 있는데, 화려하진 않더라도 기타 솔로까지 들려주는 ‘Hélas…’ 같은 곡이 전형적인 예랄까? 하지만 거의 18분에 달하는 ‘Paysages Polaires’ 3연작을 듣자면 왜 퀘벡 블랙메탈을 사람들이 찾아들었을까 하는지에 대한 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Forteresse가 좀 더 선동적인 스타일이라면 Immortal마냥 휘몰아치는 북구의 칼바람을 그려내는 Cantique Lépreux가 전통적인 블랙메탈의 상에는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철저하게 차가운 풍경을 그려내기보다는 꽤나 서정을 드러내는 멜로디 덕분에 다른 동류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좀 더 듣기 편할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Mgla의 퀘벡풍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척 잘한다는 뜻이다.

[Eisenwald, 2018]

Triglav “When the Sun Is Rising Above the Earth”

CCP라는 레이블의 밥줄은 아무래도 서정을 앞세운 류의 메탈이지 않은가 싶은데(블랙이든 둠이든 간에) 그래도 간간이 등장하면서 대개 괜찮았던 스타일은 포크 바이브 강한 멜로딕 블랙메탈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Nerthus가 있을 것이고, Malnàtt도 좀 얼빠진 듯한 모습이 섞여서 그렇지 포크의 기운은 분명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름이야 처음 보지만 CCP에서 나온 서정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저 커버에서 예상되는 스타일은 꽤 분명한 편이다.

음악도 그런 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레이블은 네오클래시컬 무드에 어우러진 포크풍 정도로 홍보하고 있지만 클래시컬 얘기까지 하는 건 좀 과해 보이고 “The Taste of Victory” 시절의 Nokturnal Mortum을 떠올릴 구석이 있지만(하긴 이 분들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니) 또 그 정도로 흥겹지는 않은 류의 블랙메탈이다. 사실 포크풍이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는 평이한 리프의 블랙메탈에 가까운 편인데, 플루트가 비중은 적지만 곡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한데? 싶어서 찾아보니 플루트를 맡은 Anna Merkulova은 이미 Thunderkraft에서 은은한 포크풍을 충분히 경험하신 분이었다. 검증된 경력직이었던 셈이다.

인상적이랄 정도까진 아니지만 이 한 장 내고 망해버리기는 아쉬운 밴드일 것이다. 밴드를 이끌었던 Master Alafern는 어쨌든 Burshtyn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이 때만큼 포크적인 스타일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한 장쯤은 이런 걸 다시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CCP,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