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veman Cult “Blood and Extinction”

Caveman Cult가 오늘 공연을 한다기에 간만에. 솔직히 war-metal이란 장르를 나쁜 건 아니지만 오래 듣긴 피곤하다고 생각하고, 이미 NWN!이 맛이 갔던 2021년에 21세기의 원시인밴드를 자처하며 튀어나온 이 밴드를 어쩌다 구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뭐 까만 커버니까 그냥 같이 쓸려들어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보이긴 한다.

원시인밴드를 운운하긴 하지만 음악은 사실 전형적인 war-metal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첫 곡인 ‘Blood and Extinction’부터 적당히 노이즈와 펑크풍이 섞인 지저분한 리프가 질주하는데, 데뷔작의 찢어질 듯한 스네어 소리는 확실히 좀 진정되긴 했지만 21분에 9곡을 때려박는 이 앨범 같은 음악을 보통 광폭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Cannibal Feast’처럼 나름 흥미로운 리프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긴 하지만 앨범의 주류는 결국 ‘Conquistador de hierro’처럼 거의 그라인드에 가깝게 밀어붙이는 war-metal이다. 사실 장르의 미덕을 구현한다는 면에서는 이만한 밴드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요새 워낙 많은 Revenge 짝퉁같은 사례와는 확실히 구별되고, 듣다 보면 이 음악을 듣고 어떻게 모슁을 할 수 있을까 싶은지라 공연장에서는 어떨지도 궁금하다. 이래저래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Nuclear War Now!, 2021]

Violent Force “Malevolent Assault of Tomorrow”

1987년 (데모들을 빼면)앨범 한 장만을 내놓고 사라진 독일 스래쉬 밴드의 바로 그 유일작.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절 걸출한 독일 스래쉬메탈 밴드들보다 이렇게 한 장 내고 사라진 밴드들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Violent Force는 한 장 내고 망해버린 밴드 치고는 나름대로 알려진 편이니 좀 나으려나? 하긴 1987년에 Roadrunner에서 앨범을 내놓을 수 있었던 스래쉬 밴드를 그냥 망했다는 한 마디로 끝내버리기도 좀 그렇다. 각설하고.

음악은 사실 나쁘지 않다. 듣자마자 Destruction, Kreator, Tankard, Sodom 등 독일의 무거운 이름들이 약간의 펑크풍과 함께 어울리는 류의 스래쉬메탈을 연주하는데, 저 묵직한 이름들이 보여준 파괴적인 분위기와는 사실 거리가 있고, 그보다는 적당한 펑크풍을 싣고 깔끔하게 후딱후딱 잘 달려주는 스타일이라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나름대로는 변화를 주려는 시도인지 스래쉬 리프에서 NWOBHM풍 헤비메탈로 이어지는 모습도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 앨범을 굳이 찾아들을 이들 사이에서는 호오가 갈릴 것이다. 이 템포체인지에 이어지는 적당히 멜로딕한(그리고 때로는 좀 길다 싶은) 솔로잉을 듣고 좋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혹자는 제대로 달리지를 못하고 절뚝거린다 할 수도 있어 보인다.

내 경우는 다행히 전자에 속한다. ‘Destructed Life’나 ‘S.D.I’ 같은 곡은 독일 스래쉬와 그 시절 미국식 크로스오버 스래쉬의 미덕들을 적당히 받아들인 우수사례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Kreator 같은 이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또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한지라 재발매반은 염가에 많이들 볼 수 있으니 이 정도면 한 장쯤 구비해도 좋을지도.

[Roadrunner, 1987]

Mosaic “Harvest/The Waterhouse”

Mosaic는 독일 블랙메탈 밴드이다. 특이점이라면 이 밴드에게 붙는 장르적 분류는 흔한 ‘포크 블랙’이 아니라 ‘블랙메탈/포크'(metal-archives 기준)라는 점이다. 사실 블랙메탈이라지만 포크의 기운보다는 둠-데스나 Bethelehem풍 다크 메탈에 가까워 보이는 구석이 더 많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의 작품들은 모은 컴필레이션인만큼 DSBM을 많이 참고했다랄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 와서는 꽤 전통적인 부류에 속하는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밴드지만, 블랙메탈만큼이나 포크를 자주 연주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 컴필레이션도 밴드의 그런 면모대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드 A가 Current 93 풍의 네오포크라면(아무래도 Inkantator Koura의 목소리가 David Tibet 비슷한지라 그럴 것이다) 사이드 B는 Primordial에서 포크 바이브를 좀 덜어내고 더 휘몰아치는 방향으로 풀어낸 듯한 블랙메탈을 들려준다. 비교적 평화로운 정경을 그려내는 앨범 초반은 슬슬 샘헤인 축제에 가까워지면서 주술적인 분위기로 변모하고, 메탈이나 앰비언트가 포크와 함께 등장하면서 그 주술성은 슬슬 광기로 나아간다(특히 ‘Der letzte Atem’). 그런 면에서 꽤 신경써서 만들어진 앨범일 것이다. 녹음된 시기들은 서로 다르지만 곡들의 배치를 통해 나름 컨셉트 앨범처럼 들리게 만들었다고 할까? 덕분에 우리는 ‘The Emerald Sea’나 ‘Daz Wazzerpfærd’ 같은 곡을 실제 템포보다 더 후련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Current 93이 블랙메탈을 연주했다면 나올 법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블랙메탈과 네오포크를 모두 즐기는 부류라면 일청을 권한다.

[Eisenwald Tonschmiede, 2016]

Dusk(PAK) “Jahilia”

파키스탄 출신 프로그레시브 둠-데스 밴드의 2집(말하고 보니 프로그레시브란 얘기는 좀 과하긴 하다). 사실 파키스탄 출신이라 그렇지 이 앨범 자체는 국내 중고시장에서도 은근히 자주 보였고, Forgotten Silence 덕에 Epidemie라는 레이블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곳이었다. 말하자면 아니 무슨 수로/어째서 파키스탄 밴드 앨범을 구했는가? 라고 하기에는 꽤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말하고보니 왜 파키스탄 밴드 앨범을 구했는지 변명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라 이게 뭔가 싶다. 넘어가자.

음악은 꽤 독특한 스타일이다. 좋게 얘기하면 Opeth 류의 음악에서 리프를 좀 더 간단하게 바꾸고 둔중함을 강조하면서 다양(하다기보다는 잡다)한 요소들을 가미했다 할 수 있겠는데, 꽤 스케일 큰 연주를 들려주는 키보드와 평범한 리프에 비해서 확실히 빛나는 솔로잉이 더해지면서 나름의 개성을 보여준다. 특히 후자는… 이렇게 솔로를 할 수 있는 분들이 왜 리프는 재미없게 만들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빛나는 구석이 있다. 중간중간 나오는 옛날 호러영화 샘플이나 일렉트로닉스가 왜 굳이 등장해서 싼티를 더해주는가 하는 의문도 있지만 일렉트로닉스만 제외하면 “THOTS”에서 Forgotten Silence가 써먹은 방식과 비슷해 보이는 구석이 있고, 90년대 후반의 Sadist를 좋아했던 이라면 사실 꽤 친숙하게 여길 수도 있을 법한 스타일이다. ‘Nightbulb Angel’의 후반부에서 “Tribe”를 떠올릴 이가 아마도 나만은 아닐 것이다.

믹싱만이라도 좀 신경쓰고 드럼만 머신 말고 세션을 썼다면 지금의 중고매장 종신회원같은 입지보다는 훨씬 나은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저 감각적인 솔로잉들만으로도 중고음반값은 하고도 남을 것이다.

[Epidemie, 2003]

Lux Occulta “My Guardian Anger”

Lux Occulta의 3집. 사실 1999년 즈음의 이 밴드의 인기 포인트(뭐 인기가 많았다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는 동시대의 다른 유사한 밴드들보다 서정에 기운 심포닉블랙을 들려준다는 점에 있었을 것이고, 그게 “Dionysos”까지의 밴드의 경향이었다면 “My Guardian Anger”는 밴드의 방향성 자체를 틀어버린 앨범이었다. Decapitated의 멤버들을 모셔온 덕에 음악은 확실히 데스메탈풍 리프에 기운 스타일로 변모했고, 그런 면에서는 Lux Occulta가 기존에 보여준 나름의 개성은 걷혀버린 음악이 되었다. 여전히 심포닉한 음악이고, 훌륭해진 음질이 공격적인 심포닉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기는 했지만 건반의 역할은 이제 나름의 서정을 구현하기보다는 기타가 주도하는 변화무쌍한 전개를 뒷받침하는 모습에 가깝다. 덕분인지 이 변화를 별로 내키지 않아했던 이들도 많아 보였고, 이후의 앨범들은 또 이 앨범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걸 보면 밴드 스스로도 실패한 시도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즐겨 듣는 이라면 기존의 모습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서정을 좀 제쳐두고 밴드가 보여준 음악은 동시대의 여느 심포닉 밴드들에 비해서 더욱 격렬하면서도 계속해서 변화를 가져가는 모습이었고, 훗날의 ‘chaotic’하다고 불리는 스타일을 조금은 예기하는 음악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chaotic’한 블랙메탈 밴드들에 비해서는 훨씬 멜로디가 강하므로 더 듣기 쉬운 것은 아마 이쪽일 것이다. 테크니컬데스 정도까진 아니지만 어느새 테크닉으로도 경지에 오른(솔직히 데뷔작때만 해도 좀 문제가 있었다)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런 면에서는 밴드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가장 무난한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Solefald가 “Neonism”을 내면서 간과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앨범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 ‘Mane-Tekel-Fares’는 (계산해본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1999년에 가장 많이 들었던 곡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는 별로 찾아듣는 이 없어 보이지만 모르시는 분이라면 일청을 권한다.

[Pagan,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