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re of Tragedy “Last Curtain Call”

생각해 보면 Dream Theater 말고 Theater라는 단어를 이름에 쓴 메탈 밴드는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몇 안되는 밴드들 중 가장 성공한 사례를 생각해 본다면 이 Theater of Tragedy가 아닐까 싶다. 하긴 그 정도 되니까 국내에도 앨범 여러 장이 라이센스가 될 수 있었고 지금 이 앨범처럼 밴드의 해체 전 마지막 라이브가 앨범으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레이블이 돈 없으니 밴드가 돈 대라고 하자 실제로 펀드레이징이 진행되어 팬들이 제작비의 일부를 부담했다는 건 이미 꽤 유명한 얘기다. Liv Kristine이 참여하지 못한 게 옥의 티라면 티이긴 한데 이 분이 참여하셨으면 후임자인 Nell Sigland도 입장이 꽤 난처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 그 정도까지 기대할 순 없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앨범은 덕분에 선곡부터 음질까지 밴드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모습으로는 더할나위 없어 보인다(덕분에 오히려 밴드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좋을지도). 당연히 최근작들의 수록곡들이 제일 많지만 이제는 꽤 가물가물한 초창기 둠-데스에서 5곡을, “Aegis”에서 1곡을, 일렉트로닉 시기에서 3곡을 담았으니 아쉬움이 없진 않겠지만 밴드로서는 최선의 선곡이지 않았을까 싶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앨범에는 꽤 일관된 분위기가 있다는 점인데, 이 밴드의 음악이 커리어 내내 얼마나 널을 뛰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한 역량이구나 싶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라도 Liv Kristine을 부를 순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Nell과 Liv는 비슷한 듯 싶으면서도 확실히 결이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Forever is the World’. 사실 이 곡이 왜 마지막 곡이 되었는지는 듣기 전에는 몰랐는데 보니까 꽤 잘 어울리더라. 마지막을 고하는 모습으로는 꽤 멋져 보였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파이어족(벌 만큼은 벌지 않았을까)으로 거듭난 밴드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멋진 앨범이다.

[AFM, 2011]

Dream Theater “Parasomnia”

Dream Theater의 바야흐로 16집. 사실 이젠 이 밴드의 신보가 나왔다고 시끌시끌해지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닌 듯하지만(뭐 그건 꼭 밴드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정규작이 라이센스될 수 있다는 게 밴드의 저력을 방증하는 점일지도. 그렇게 간만에 나온 메탈 라이센스작인데다 Mike Portnoy의 간만의 복귀작이라는 것도 관심을 끌기에는 적절해 보인다. 어찌 보면 “Images and Words”의 흑화된 버전처럼 보이는 커버도 눈길을 끈다. 과장 좀 섞는다면 이쯤 되면 커버의 저 여자분의 이름이 사실은 Alice나 Abigail이라더라도 믿을 만해 보인다.

음악은 기대보다 들을만했다. 실력이야 이미 더없이 검증된 밴드인만큼 기준점은 꽤 높은 편이고, Portnoy의 복귀작답게 Mike Mangini 시절의 앨범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헤비한 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James Labrie의 음역대가 예전같지 않은 이상 Labrie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주도 어느 정도 묵직하게 가는 게 불가피할지도? 게다가 Portnoy가 참여했던 마지막 앨범이었던 “Black Clouds & Silver Linings”의 오프닝이었던 ‘A Nightmare to Remember’의 테마를 확장한 컨셉트 앨범이라고 한다. 덕분인지 곡을 끌어가는 방식 자체는 확실히 파워메탈스러워진 부분들(특히 ‘Midnight Messiah’의 후반부는… 이 분들 요새 Helloween 들으시나 싶기도 하다)을 제외하면 밴드의 최근작들과 많이 달라 보이지 않음에도 앨범의 전반적인 인상은 뭐가 됐든 밴드가 그네들의 ‘좋았던 시절’을 지금에 와서 다시 선보인다는 것이다. Jordan Rudess가 이만큼 자제하는 밴드의 앨범도 생각해 보면 꽤 오랜만일 것이다.

말하자면 “Train of Thought” 이후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어두운 분위기의 앨범이고, Portnoy의 복귀작에 가질 법한 기대감만큼은 충족시킬 수 있어 보인다. 얘네는 늘 똑같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런 이들은 아마 이 앨범을 사지 않았을 테니 그냥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자. 잘 팔려야 앞으로도 라이센스가 되지 않을까.

[Inside Out, 2025]

Defeated Sanity “Chronicles of Lunacy”

2024년은 평소보다 데스메탈을 좀 덜 들었던 해인 것 같은데 어쨌든 내 짧은 편력 안에서 2024년의 데스메탈 한 장이라면 아무래도 이 앨범이다. 아무래도 1집이 나온 게 2004년인지라 데스메탈의 선구자들과 보통 같이 얘기되는 편은 아니지만 활동 기간만 보면 그래도 이제 30년을 넘어가는 이 관록의 독일 밴드는 “The Sanguinary Impetus”를 마지막으로 Willowtip을 떠나 Season of Mist에서 앨범을 내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바야흐로 이 장르에서는 메이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물론 이 무지막지한 스타일에 메이저란 단어를 그냥 갖다붙이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주목한다는 의미 정도로 해 두자.

이 밴드의 특징은 테크니컬데스와 브루털데스가 적절히 뒤섞인 류의 음악을 하면서도 근래의 많은 밴드들과는 달리 데스코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인데(물론 올드스쿨 스타일도 아니긴 하다), 그런 방향성은 동일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좀 더 극적인 구성을 가져가면서 브루털함은 좀 덜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말하자면 “Reign in Blood”를 듣다가 “South of Heaven”을 들었을 때의 이질감과 비슷하려나? 그렇다고 느슨해졌다는 뜻은 아니고, “Disposal of the Dead / Dharmata”때부터 보여준 프로그함과 “The Sanguinary Impetus”의 아방가르드 스타일, 밴드 초창기의 좀 더 전통적인 크로매틱 스케일의 데스메탈 스타일(특히 ‘Heredity Violated’) 등 다양한 모습들이 꽤 변화무쌍하게 등장한다. ‘Amputationsdrag’ 같은 곡은 밴드의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가장 변화무쌍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는 한데… 아예 프로듀서까지 Colin Marston(Gorguts의 그 분)을 모셔온 거 보면 아예 이런 쪽으로 나가버리려나 하는 걱정도 된다. 암만 그래도 Defeated Sanity가 브루털데스가 아닌 프로그레시브를 연주하는 건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워낙 잘 뽑혀서 드는 노파심일 것이다.

[Season of Mist, 2024]

Skramasax “Dark Powers”

이름을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도 애매한 이 체코 밴드는 1991년에 본작만을 내고 해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밴드 페이스북 페이지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걸 봐서는 해체까지는 아니고 앨범만 못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아니면 친목상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을지도). 그래도 이젠 Shah나 Torr 정도로 나름 그 동네에선 레전드 소리 듣는 밴드들은 이런저런 얘기들이 꽤 알려져 있지만 이런 밴드는 알려진 게 딱히 없다. 후대의 청자로서는 그저 저 맥락 없이 붕 뜬 얼굴이 인상적인 커버를 보면서 대체 뭔 생각으로 앨범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음악은 사실 뻔하다. 이 시절 독일 스래쉬가 상대적으로 헤비함이나 공격성에 치중했다고 하면 체코의 이 시절 스래쉬는 좀 더 스피드에 치중한, 말하자면 스피드메탈과 스래쉬메탈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법한 형태를 자주 보여주는 편이고, 이 밴드도 그런 면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굳이 개성을 찾는다면 체코 밴드답지 않게 Metallica의 그림자(그 중에서도 “Ride the Lightning”)가 더 짙다는 정도? 하지만 Metallica의 서사적인 구성력 같은 건 전혀 따라가지 못하므로 지나친 기대는 곤란하다. 다만 심플한 전개의 곡을 인상적인 멜로디와 적당한 트리키함을 두루 갖춘 리프로 뭔가 있어보이게 풀어내는 능력(특히 ‘Smrtící znamení’)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 밴드의 MVP는 혼자서 다른 밴드의 트윈 기타에 딱히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역할을 해낸 기타리스트 David Macek일 것이다.

고음은 잘 올라가지만 아무래도 연주와는 겉도는 Josef Puškáš의 보컬만 참아낼 수 있다면 어지간한 스래쉬 팬이라면 일청을 권할 만한 재미는 분명할 것이다.

[S&M, 1991]

Stranger Vision “Faust – Act I Prelude to Darkness”

Stranger Vision은 이탈리아 멜로딕 파워 메탈 밴드…정도로 얘기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요새 보면 James Labrie가 게스트로 참여했다는 게 주요 광고 포인트인지라 프로그레시브 메탈인가 착각하곤 하고, 그런 구석이 아예 없는 거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 부르는 건 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이래저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신경쓴 기색이 있는 멜로딕 파워메탈 정도로 얘기하는 게 맞아 보인다.

그래도 “Faust – Act I Prelude to Darkness”가 여태까지 나온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프로그한 축이라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Poetica”도 T.S. Eliot의 작품을 소재로 했다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괴테의 그 파우스트를 컨셉트로 내세우는데, ‘Strive’의 리프부터가 파워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경계선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Look Into Your Eyes’ 같은 곡이 이 밴드의 본업은 프로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지만 ‘Dance of Darkness’처럼 좀 더 복잡한 구성을 보여주는 곡에서는 또 생각이 좀 달라진다. 정작 이 곡에는 James Labire가 참여하고 있지 않은데, ‘Nothing Really Matters’가 아니라 이 곡에 참여해서 제대로 소화했다면 진짜 회춘 소리를 들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전반부가 좀 더 스트레이트하다면 후반부는 극적인 구성을 가져가는 데 신경쓰는데, 딱히 앨범에 일관된 분위기까지는 잘 모르겠는지라 이 앨범이 컨셉트 앨범으로서 괜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암만 괴테를 내세워도 그냥 웰메이드 파워메탈 정도로 소개하는 게 맞을 것이고, 사실 그 정도만으로도 앨범을 즐기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Self-financed,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