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from the Soul “DSM-5”

Blood from the Soul의 저 데뷔작은 많은 이들의 예상이 그랬듯 (폭망까지는 몰라도 여튼)망했으나… Shane Embury의 인더스트리얼에 대한 관심만큼은 진짜였음은 Meathook Seed는 물론 이후의 커리어에서도 꽤 잘 드러나는 편이다. (Dark Sky Burial이라든가 솔로작이라든가….) 사실 이 쯤 되면 데스메탈-그라인드코어 말고 커리어의 다른 한 축이 인더스트리얼 메탈이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Blood from the Soul은 없어지지 않았고 Sigh의 Mirai를 새로운 멤버로 꼬시고 있다는 등 소문도 간혹 들려오곤 했지만, Earache가 데뷔작의 매운맛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는지 그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베이퍼웨어마냥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하긴 내가 사장이었더래도 굳이 또 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인더스트리얼에 진심이었던 Shane Embury는 Blood from the Soul을 잊지 않았고 드디어 2020년에 새로운 멤버들을 끌어들여 이제 듀오도 아닌 제대로 된 밴드로 재편하면서 27년만의 후속작 “DSM-5″를 발표하기에 이른다…는 게 이 앨범에 얽힌 이야기다. Shane Embury라는 이름의 묵직함 때문인지 Nasum이나 Soilwork 등에서 활동한 잘 나가는 후배들이 합류했다. Lou Koller는 합류하지 않았지만 새로 들어온 보컬도 Converge의 보컬(이자 레이블 사장님)인 Jacob Bannon이니 전작의 그 하드코어 보컬이 실패의 요인이라 생각한 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 쯤 되면 27년만이긴 하지만 전작의 노선에 연장선상인 앨범을 기대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럼 앨범은 어떤가? 일단 전작의 드럼머신 대신 Dirk Verbeuren의 파워풀한 드럼이 들어가면서 전작 특유의 건조한 인더스트리얼 메탈 느낌은 좀 덜해졌다. 사실 ‘Subtle Fragment’처럼 느릿한 템포 가운데 인더스트리얼을 강조하는 곡 정도를 제외하면 앨범 전반에 그라인드코어의 기운은 짙어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헤비함보다는 노이즈와 리버브로 적당히 먹먹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면모가 강한 편이고(그런 점은 Godflesh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끼워넣은 펑크풍 강한 ‘Calcified Youth’는 웬일로 이 인더스트리얼 ‘밴드’가 라이브용 트랙을 만들었다는 재밌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런 면에서 Blood from the Soul이란 이름을 몰랐던 이에게 추천하기에는 데뷔작보다는 오히려 이쪽이 더 나아 보인다. 무난하다.

[Deathwish, 2020]

Blood from the Soul “To Spite the Gland that Breeds”

Napalm Death 멤버들의 사이드 프로젝트들 중에는 대체 어떻게 라이센스된 지는 잘 모르겠으나 Meathook Seed를 위시하여 그 좁다란 문을 뚫고 한국 시장을 노크했다가 안타깝게도 중고음반시장의 터줏대감이 돼버린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Shane Embury가 중심이 된 프로젝트였던 이 밴드도 그런 사례에 해당하는데, 애초에 그 이름값에 비해서는 반응이 아쉬웠던 앨범이었던지라 국내에서 망했다고 해서 그리 튀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밴드 본인들로서는 더 열받을 얘기일 것이다.

사실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충분히 예견됐을 일이기는 한데, Shane Embury와 함께 앨범에 참여한 보컬리스트가 Sick of It All의 Lou Koller이기 때문일 것도 있겠지만, 그 듀오가 한 음악이 하필이면 인더스트리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똑같이 인더스트리얼 물은 먹었지만 어쨌든 파워풀하기는 했던 Meathook Seed에 비해서도 좀 더 Napalm Death 느낌을 확 지워버린 덕에 기존 Napalm Death의 팬으로서는 듣자마자 본전 생각을 감추기 어려웠겠거니 싶다. Lou Koller 특유의 하드코어 보컬도 사실 묵직함보다는 날렵함에 가까운 스타일인만큼 안 좋게 보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실 이 앨범이 그렇게 욕 먹을 만한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렉트로닉스 등 뭇 메탈헤드들이 거슬렸을 요소들이 넘쳐나지만 어쨌든 앨범의 중심에는 강력한 리프가 있고, 끊어짐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면서도 충분히 힘있는 Shane Embury의 리프도 인더스트리얼 메탈의 통상과는 구별되는 편이다. 오히려 싱코페이션 잔뜩 먹인 리프가 자아내는 긴장감은 Napalm Death의 여느 앨범들에도 쉬이 뒤지지 않을 것이고, ‘On Fear and Prayer’처럼 Napalm Death풍 리프를 일렉트로닉스를 덧씌워 두텁게 재현하는 모습을 보자면 인더스트리얼 핑계로 이 앨범의 힘이 빠졌다고 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메탈포스 라벨을 달고 나온 국내에서라면 이만큼 가성비 좋은 앨범도 별로 없었을지니 세평이야 어쨌든 나는 꽤 즐겨 들었다.

[Earache, 1993]

Ominous Circle, The “Cloven Tongues of Fire”

새해가 되니까 새해 인사는커녕 메탈 접었냐는 얘기만 날아오길래 잘 살고 있다는 취지로 올려보는 최근작. Osmose에서 2025년 11월에 나와서 한국에 도착한지는 얼마 안 됐으므로 나름의 근황을 보여주는 단편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오시는 분들은 모두 새해 무탈하시길 빈다. 각설하고.

이 포르투갈 밴드는 포르투갈 데스메탈의 중요한 이름…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20년 넘게 활동해 온 나름 거물인 Holocausto Canibal의 멤버들이 참여했으며 2017년에 데뷔작 “Appalling Ascension”을 발매하여 이미 상당한 반응을 얻었다는 게 넷상의 소개인데, 그래도 8년만에 신작이 나온 걸 보면 그 좋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밴드의 그간의 시간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밴드 이름도 이름인지라 저 밴드명을 ‘Omnious Circle’로 잘못 쳐서 찾다가 헤메는 이들도 꽤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밴드가 지지부진했을지언정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꽤 대단하면서도 밴드의 실력을 짐작케 해주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 짐작만큼이나 음악은 꽤 훌륭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미드템포의 묵직하면서도 먹먹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데스메탈인데, 그런 면에서는 Incantation 같은 모범사례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굴곡이 있고 블랙메탈의 기운도 강한 편이며(특히 ‘Writhing, Upturning, Succumbing’) 때로 힘있게 밀어붙이는 부분에서는 Immolation풍의 화끈함을 일견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최근의 경향도 좀 들었다는 듯 코드를 뒤트는 부분에서는 Portal 같은 밴드들이 잘 써먹곤 하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Utterance of the Formless’ 같은 곡을 듣자면 결국 불끈거리는 리프를 중심에 두고 에너지를 쏟아내는 데스메탈 본연의 미덕이 앨범의 핵심에 있어 보인다. 되게 좋게 들었다는 뜻이다.

[Osmose, 2025]

Slayer “Seasons in the Abyss”

앞서 “Slaughter in the Vatican”에서도 얘기하긴 했지만 1990년의 Exhorder는 Slayer보다 더 강력한 데가 있는 밴드였다… 라고 하면 그건 좀 과하지 않냐고 하는 이가 있을지언정 이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강력한 근거는 Slayer의 이 1990년작 “Seasons in the Abyss”일 텐데, Slayer의 클래식 시절을 어디까지 잡느냐 한다면 이 앨범까지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고민거리일 정도로 밴드의 좋았던 시절을 보여주는 앨범임에는 의문이 없겠지만 이 앨범이 80년대 초중반 Slayer라는 밴드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지에는 의문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밴드가 느릿해진 건 “South of Heaven”이 먼저였지만 어쨌든 무거운 분위기를 잃지 않았던(녹음 덕분에 그 무게감을 갉아먹은 기타 톤이 아쉽지만) “South of Heaven”과 이 앨범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래도 Rick Rubin이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봤는지 전작보다는 좋아진 레코딩과 어쨌든 앨범 초반을 힘차게 여는 ‘War Ensemble’이 있고, 좋게 얘기하면 네 장의 앨범으로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졌고 예전처럼 빠르게 휘몰아치기에는 너무 체급이 커져버렸다고 생각했을 법한 이 밴드가 나름대로 스래쉬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완급조절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앨범이랄 수 있을 것이다. 나쁘게 얘기하면 앞서 밴드가 내놓았던 클래식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순한맛처럼 보이는 데가 있다는 건데, 그 아쉬움을 메우는 건 이 앨범을 끝으로 “God Hates Us All”로 돌아오기까지 자리를 비우는 Dave Lombardo의 드럼이다. 어쩌면 “Divine Intervention”과 이 앨범의 차이는 바로 이 드럼에서 시작되는 특유의 분위기의 유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많이들 좋아하는 ‘Dead Skin Mask’도 내 귀에 안 꽂히는 걸 보면 사실 이 앨범 자체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랄 수도 있겠고, Slayer라는 이름만 지우고 본다면 충분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법한 앨범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 이름을 지우고 보는 게 말이 안 되는 게 문제지.

[Def American Recordings, 1990]

Exhorder “Slaughter in the Vatican”

Exhorder가 결성된 것은 1985년이었으니 동시대의 날리던 스래쉬 밴드들을 의식했겠거니 하는 게 맞겠지만 밴드가 앨범을 내놓은 것은 1990년이 되어서야였다. Pantera의 “Cowboys from Hell”이 나온 것도 1990년이었고, 이 앨범보다 겨우 3-4개월 전에 발매되었다. Pantera의 저 앨범이 스래쉬메탈이라는 음악을 새롭게(사견으로는 괴이하게) 정의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불러오는 동시에 ‘전형적인’ 스래쉬 밴드들의 몰락을 예기하는 신호탄이었다고 친다면 스래쉬 밴드가 그래도 차트에서 주목받을 실낱같은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시절의 끝물이었던 셈이고 실제로도 꽤 좋은 평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이 앨범이 “Cowboys from Hell”의 유사사례로 언급되곤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꽤 기이해 보인다.

사실 Exhorder의 음악에서 일면 그루브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고, Vinnie LaBella와 Jay Ceravolo의 기타에서 일견 Dimebag Darrell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Kyle Thomas의 보컬을 Phillip Anselmo와 비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니 이들을 Pantera와 비교하는 걸 틀렸다라기엔 좀 그렇긴 하다.. 다만 그루브가 훨씬 강조된 Pantera와 달리 Exhorder의 음악은 스래쉬메탈의 컨벤션에 훨씬 기울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Scott Burns의 손이 닿은 만큼 헤비함에 있어서도 당대의 데스래쉬 밴드들에 근접한다. 말하자면 이 글에서조차 계속 Pantera와 Exhorder를 비교하고 있지만 Exhorder를 Pantera와 비교해서만 얘기하는 것은 밴드에게 꽤 억울할 거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얘기를 좀 바꿔 보면 그루브함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Exhorder의 노선은 스래쉬메탈과 데스메탈의 경계선상에서 나름의 생존방향을 모색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당대에 Roadrunner에서 나온 수많은 장르의 명작들의 일석을 차지할 만하다. 사견이지만 1990년의 Slayer는 ‘Legions of Death’ 같은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Roadrunner,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