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abbath “Vol. 4”

Black Sabbath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한 장 더. Ozzy 시절 Black Sabbath의 6장의 앨범들 중 무엇을 고르느냐? 의 문제는 결국 이 앨범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한 Black Sabbath의 프로그 워너비 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앨범이 못 나왔다기보다는 “Master of Reality”에서 1년, “Paranoid”에서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밴드의 음악이 이렇게 나왔으니 이거 뭐지 싶은 이들도 꽤 많았을 것이다. 그나마 나처럼 Black Sabbath를 동시대로 접하지 못한 이들에겐 어차피 다 같이 클래식일 테니 상관이 없겠지만, 밴드의 과거를 직접 지켜봤을 (내 주변의)아재들에게 이만큼 인기 없는 Black Sabbath의 앨범도 별로 없었다. 이런 변모의 원인에 대해서는 (약을 포함해서)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은 듯하나 어쨌든 좋던 나쁘던 간에 이 앨범이 밴드의 터닝 포인트였음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헤비해졌던 밴드의 초창기 헤비메탈에 별 정이 없고 적당히 낭만을 곁들인 부드러운 전개의 발라드(‘Changes’)가 앨범에 등장했다. 물론 이전의 앨범에도 발라드는 있었지만(‘Solitude’나 ‘Planet Caravan’이나) 어쨌든 앨범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에 맞춰가는 전작들의 곡에 비해서는 확연히 구분되는 전개의 이 발라드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에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Black Sabbath의 팬들은 굳이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Black Sabbath의 초창기를 통틀어서도 확연히 이질적으로 보이는 인스트루멘탈 ‘Laguna Sunrise’도 어떻게 앨범에 들어갔을지 나는 아직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전작들의 히트곡을 의식했음이 역력해 보이는 히트곡 ‘Snowblind’나 ‘Supernaut’, ‘St. Vitus Dance’ 같은 곡이 있으니 헤비메탈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Wheels of Confusion’의 블루지한 리프가 훗날의 슬럿지를 연상케 하는 양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이 앨범이 후대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하긴 이 때의 Black Sabbath는 똥반을 낼 수 없는 밴드이긴 했다.

[Vertigo, 1972]

Black Sabbath “Sabbath Bloody Sabbath”

Ozzy Osbourne이 죽었다. 퇴근길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었는데 평소에 메탈도 잘 안 나오는 방송이 Ozzy 특집으로 방송시간을 채워버리는 거 보니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대단한 분이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워낙에 인상적인 활동상을 많이 남겨놓은지라 Ozzy가 참여한 앨범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지만, Randy Rhoads를 내세운 “Blizzard of Ozz”나 Black Sabbath의 마일스톤인 “Black Sabbath”나 “Paranoid”를 고르지 않는 변태같은 취향의 소유자라면 아무래도 “Sabbath Bloody Sabbath”를 고르지 않을까 하는 게 사견. 어찌 됐건 저 두 장의 앨범들이 헤비메탈 밴드로서 Black Sabbath의 오늘의 입지를 대변하는 사례라면 Ozzy 시절의 앨범들 중 이 밴드가 메탈 밴드 다우면서 최상의 독창성을 보여준 건 이 앨범일 것이다. ‘Spiral Architect’의 백파이프처럼 잘 알려진 사례도 있지만, ‘Looking for Today’의 Tony Iommi의 플루트에 이어지는 강력한 리프와 Ozzy의 건강박수… 처럼 다른 앨범이었다면 어려워 보이는 모습들을 이 앨범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래도 Bill Ward의 재즈적인 드러밍과 멋진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A National Acrobat’과 Black Sabbath식 프로그레시브 록을 보여주면서 Rick Wakeman이 아들의 훗날 일자리의 바탕을 깔아준 ‘Sabbra Cadabra’가 가장 인상적일 것이다. 말하자면 Black Sabbath가 메탈 밴드이면서도 다른 동시대의 브리티쉬 하드록 밴드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앨범일 것이고, Ozzy 본인도 업계 최고의 Beatles 팬 답게 메탈 말고도 다른 류의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사례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Black Sabbath와 Ozzy Osbourne이라는 인물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데에는 이만한 앨범이 없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Vertigo, 1973]

Pantera “Cowboys from Hell”

이 앨범이 다가오는 24일이면 35주년이라기에 간만에. 이 정도면 이런저런 매체들에서 얘기 좀 나오려나 싶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비평(을 넘어 뮤직 저널리즘)의 위기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가 돼버린 지금인만큼 현재진행형도 아닌 Pantera 얘기를 그냥 넘어간대도 이상할 것까진 없을 것이다. 24일까지 조금은 남았으니 이런 건 설레발이라고 치고 본론으로.

생각해 보면 슬슬 머리가 굵어지며서 적어도 Pantera의 음악을 스래쉬라기보다는 그루브메탈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얘기할 즈음부터는 Pantera를 잘 듣지 않았고, 밴드도 슬슬 “Reinventing the Steel”의 아쉬운 성과를 뒤로하고 문닫을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Dimebag Darrell의 날카로운 리프는 스래쉬메탈에 붙여놔도 밀릴 것이 없었으나(이건 Exhorder와 비교하면 더 분명할 것이다) 트리키하고 그루브한 전개와 멤버들이 내세운 카우보이 기믹은 텍사스 출신답게 서던 록의 기운을 풍겼다. 빠른 곡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이 밴드는 딱히 스피드에 방점을 둔 밴드가 아니기도 했으니 기존 스래쉬의 팬이라면 ‘Cemetery Gates’를 듣고 남들이 좋다거나 말거나 이게 뭐냐는 반응을 꽤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나도 그렇고 지금은 Pantera를 듣지 않는 많은 이들도 한때는 ‘Psycho Holiday’나 ‘Domination’을 듣고 헤드뱅잉까진 아니더라도 고개를 까딱였을 기억은 남아 있지 않을까? 헤비메탈이 기본적으로 강력한 리프를 앞세운 사나이들의 땀내나는 음악이라 한다면 적어도 1990년 차트를 스쳐갔던 많은 밴드들 중 저 명제에 가장 어울리는 건 아마도 Pantera였음은 맞아 보인다. “Vulgar Display of Cowboys”의 당혹스러운 추억 때문에라도 이따금 찾아듣게 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저 때 저런 거 듣고 있어서 계속 솔로였나 싶기도 한데 거울 보니 음악 탓할 건 아닌 것 같아 이만 넘어간다.

[Atco, 1990]

Tyrannic “Tyrannic Desolation”

생긴 건 블랙스래쉬나 데스래쉬 밴드처럼 생겼으나 때로는 (Black Sabbath풍의)둠이래도 괜찮을 만한 분위기의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이 호주 듀오(그런데 왜 썸네일 사진들은 다 3명으로 돼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도 드디어 나름의 성과를 거뒀는지 고국의 Seance Records를 벗어나 요새 이 장르에서는 잘 되는 집들 중 하나인 Iron Bonehead에 몸담고 앨범을 내놓기 시작했다. 300장 한정이라니 레이블에서는 그렇게 큰 기대는 없는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지만 찾아보니 이 레이블에서 CD를 300장 이상으로 찍은 경우도 꼭 많지만은 않으므로 이런 건 쓸데없는 걱정일 것이다. 각설하고.

특이한 점은 이런 류의 둠 스타일을 받아들인 밴드라면 헤비메탈 기운 강한 리프를 보여주는 게 당연해 보이고 이들도 그렇긴 하지만 좀 더 ‘chaotic’하게 뒤틀린 형태의 리프를 내세운다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Deathspell Omega 닮았다 할 정도는 아니고 한창 시절 Master’s Hammer 같은 밴드들이 그랬듯이 체코 블랙메탈이 보여줬던 적당히 에스닉하면서도 변칙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고, 오히려 이전작들에 비해서 헤비메탈의 기운이 옅어진 덕에 그런 뒤틀린 분위기는 더 짙어 보인다. ‘Only Death Can Speak My Name’처럼 Cathedral 풍 강한 곡이 있긴 하지만 여태까지의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블랙메탈에 기울어진 음악이랄 수 있다.

그래도 이런 류의 블랙메탈이 보여줄 수 있는 적당히 오컬트하고 ‘병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보여주는 편이므로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사실 그런 면에서는 통상적인 블랙메탈보다는 Mortuary Drape 같은 밴드의 팬에게 더 와닿을 수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300장을 찍은 이유는 레이블이 큰 기대가 없었나보다 쪽으로 생각이 기울지만 그래도 잘 됐으면 좋겠다.

[Iron Bonehead, 2024]

Razor “Armed and Dangerous”

역사적인 Razor의 데뷔 EP. 1984년에 나온 스피드/스래쉬메탈 데뷔작이 뭐 그리 대단하냐 하면 할 말 없는데(Slayer는 이미 데뷔작에다 “Haunting the Chapel”까지 내놓은 시점이었다만, 그건 뭐 Slayer니까) 그래도 Razor만큼 일관되게 달리는 스타일을 유지한 스래쉬 밴드는 그리 많지만은 않다. 말하고 보니 바로 Whiplash나 Exciter 같은 이름들이 떠오르고 심지어 Exciter는 이미 1983년에 데뷔작을 냈으니 좀 더 이른 행보를 보여주었지만 앨범명부터가 그렇듯이 헤비메탈의 기운이 강한 스피드메탈이었던 Exciter에 비해서 장르의 전형에 가까운 건 Razor가 아니었나 하는 게 사견.

그런 이름값에 비하면 이 데뷔 EP는 이상할 정도로 CD 재발매가 꽤 늦은 편이었는데, 그래도 80년대 캐나다 메탈의 굵직..한지는 좀 헷갈려도 어쨌든 의미있는 이름이었던 Viper Records에서 나온 이후의 앨범들과 달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나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이야 High Roller나 Relapse 같은 곳에서 재발매한 덕에 구하기 쉬운 앨범이 됐지만 덕분에 나 같은 얼치기 메탈헤드는 구해 듣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앨범명이 앨범명인지라 Anthrax의 그 EP를 검색순위에서 절대 이길 수 없었던 점도 있겠다. 하긴 이쪽이나 그쪽이나 찾는 이는 대개 비슷했겠지만.

그런 Razor의 이름값을 생각하고 이 EP를 듣는다면 생각보다 좀 더 헤비메탈에 가까운 음악에 잠깐 당황할 수도 있겠다. 바로 “Executioner’s Song”부터는 때로는 필받아서 너무 빠르게 간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스피드메탈이 등장함을 생각하면 밴드가 이런 스타일을 보여준 건 사실상 이 EP가 유일해 보이는데, 그래도 수록곡들은 대개 훌륭한 스피드를 보여주는데다(당장 수록곡의 절반이 “Executioner’s Song”과 겹침) ‘Killer Instinct’처럼 “Evil Invaders”의 스래쉬메탈의 단초를 보여주는 곡도 있으니 훗날의 Razor의 위명을 생각하더라도 부끄러워할 만한 앨범은 아닐 것이다. 혹자의 말마따나 Motörhead와 Judas Priest의 그림자가 만나 좀 더 어두워진 지점에서 튀어나온 음악이래도 무난할 것이다.

[Voice,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