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tlôs “Nothing In Between Forever”

Lantlôs의 2026년 복귀작. Prophecy 그랜드 서포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레이블의 발매작들을 공식 발매일보다 조금 먼저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고(이 앨범은 4월 3일이 발매일이다), 나쁜 점은 요새처럼 환율이 미쳐 날뛰는 시절에는 매월 월급마냥 빠져나가는 금액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뭐 이렇게 받아보지 않더라도 언제고 사긴 했을 만한 앨범들이 많으니 시점의 문제이지 나갈 돈이었다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라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인생은 그보다는 대개 좀 더 팍팍하다. 각설하고.

이 밴드가 블랙게이즈로 시작하긴 했지만 Neige와의 결별 이후 Herbst의 사실상 세션맨들 낀 원맨 밴드(라고 하면 다른 멤버들은 그게 뭔 망발이냐 하겠지만)마냥 운영되면서 원래도 그리 짙지 않았던 블랙메탈의 기운은 본격적으로 걷혀나가고 있었고, 이 앨범은 이제 한때 블랙게이즈였고 하는 얘기도 그저 사족에 가까워보일 정도로 블랙메탈과 상관없는 음악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Melting Sun”과 “Wildhund” 식의 얼터너티브 메탈 노선을 더욱 끌고 나갔다랄 수 있겠는데, 어쨌든 Deftones와 Hum을 잘 섞어놓은 듯한 묵직함이 있었지만 이 앨범에서는 그런 묵직함도 어느 정도 덜어냈다랄까? 쟁글쟁글 기타에 일렉트로닉에 오토튠까지 등장하는 ‘Oxygen’은 오히려 90년대 얼터너티브 리바이벌을 꿈꾸는 밴드의 야심작처럼 보인다. ‘Numb TV Superstar’나 ‘Autoguard’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적당히 활기찬 일렉트로닉스가 묻은 얼터너티브는 듣다 보면 ‘My Girlfriend’s Girlfriend’를 연주하던 시절의 Type O Negative가 음울함과 보컬의 느끼함을 덜어내고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곧 ‘WIildhunter’의 진중하지만 무겁지는 않은 마무리가 재차 Type O Negative의 그림자를 불러온다.

그러니까 레이블의 ‘슬럿지-팝’ 같은 홍보문구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어 보이고, 듣다 보면 여기저기서 생각나는 90년대 얼터너티브가 묵직함과 나름의 개성들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듣는 게 나을 것이다. 가끔은 이 양반 독일이 아니라 미국 출신 아닌지 궁금해진다.

[Prophecy, 2026]

Ainur “Children of Hurin”

밴드명부터도 그렇지만 데뷔부터 지금까지 톨킨의 유산만을 소재로 앨범들을 내놓고 있는 이탈리아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2집. 물론 톨킨의 작품을 소재로 삼은 록/메탈 밴드는 셀 수 없이 많고 특히나 서사를 따지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는 더욱 그렇지만, 반지의 제왕과 실마릴리온이 아닌 작품을 소재로 삼은 사례는 찾아보면 없지야 않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톨킨의 작품을 통틀어서도 이만큼 우울한 이야기도 없을 것이고 파멸하는 주인공이라면 첫손가락일텐데 좀 의외다. 하긴 톨킨의 작품들 중에 후린의 아이들을 제일 좋아하기도 어렵긴 할 테니 일단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이 밴드의 특징이라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라고는 하지만 기타/건반/드럼의 3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나레이션이나 소프라노/바리톤 성부의 보컬, 베이스, 하프, 바이올린, 비올라, 프렌치호른, 플루트 등이니 일반적인 밴드라기보다는 많이 확대된 편성의 실내악단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멤버 중에는 댄서를 맡은 인물도 있다. 정말 춤을 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세풍의 일부 간주나 마드리갈, 레치타티보 등 노골적으로 클래시컬한 일부분을 제외하면 결국은 Gianluca Castelli의 무그가 음악을 주도하는만큼 프로그레시브 레떼르가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너제틱한 리듬을 만나볼 수 있는 ‘Glaurung’s Death’나 웅장한 리프가 돋보이는 ‘The Sack of Nargothrond’ 정도를 제외하면 록 밴드다운 박력을 만나볼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별로 없어 보인다. 주인공이 프로도 저리가라 수준으로 온갖 고생을 다 하다 끝내 파멸에 이르는(좋게 얘기하면 무척이나 바그너적인) 원작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렇게 잔잔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꽤 김빠진 음악이라는 게 사견이지만 세평은 들어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훨씬 좋은 모양이다. 5유로 주고 산 앨범이 어딘가에서는 절대 사지 말라는 뻥카가 의도였는지 130파운드에 올라와 있으니 아쉬움은 어느새 땡잡았다에 가까운 유쾌함으로 변모한다. 다시 한 번 들어봐야겠다.

[Electromantic, 2007]

Syndone “Spleen”

Vinyl Magic이란 레이블을 알게 된 것은 Metamorfosi의 “Inferno”였다. 솔직히 이탈리안 심포닉록의 과장성을 좀 피로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 앨범 또한 그런 이탈리안 심포닉의 병폐를 피해가진 못하고, PFM이 이미 1972년이 “Per Un Amico”를 내놓았으므로 당대 이탈리안 심포닉의 정점이라 하기도 뭐하지만 어쨌든 꽤 멋진 앨범이었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덕분에 꽤 안목 있는 재발매 전문 레이블이다… 라는 게 나의 레이블에 대한 첫인상이었는데, 이런 재발매 전문 레이블이 많이들 그렇지만 Vinyl Magic도 정작 자기들이 발굴한 밴드들의 앨범들은 딱히 신통치 못했다.

특히 90년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의 신성들!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나름 야심찬 기획의 발로로 예상되는 Vinyl Magic New Prog 시리즈는 그 시절 반응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이 레이블을 SI Music 이탈리아 지부…마냥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SI Music을 그리 싫어하지 않을뿐더러 그 호오를 묻는다면 나름 좋아하는 편이라 말할 수 있고 이 New Prog 시리즈 발매작들도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고 느끼지만, 앞서 얘기한 이탈리안 심포닉의 병폐를 단적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들어보면 된다… 라는 게 사견. 당연하지만 아마도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인지라 이 시리즈의 앨범들은 이제 나온 지 거의 30년이 돼가지만 아직도 중고는 물론이거니와 무려 레이블 샵에서 (전부는 아니긴 하지만)재고떨이를 계속하고 있는 슬픈 처지에 있다. 덕분에 가성비는 무척 좋게 느껴지지만, 음악 얘기하면서 계속 가성비 언급하는 건 밴드 입장에서 좋을 일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접하면 일단 손창민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이름(신돈이라고 읽는 게 맞는가 몰라)을 달고 나온 밴드이 이 데뷔작은 그래도 이 New Prog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음악을 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가 거의 대부분 ELP 스타일의 프로그를 연주한다는 점인데, 이 밴드도 예외는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재즈, 펑크 등 좀 더 다양한 면모를 받아들인 퓨전 느낌이 강하고, 1992년이었지만 동시대의 네오프로그의 문법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게 개성이라면 개성이겠다. 건반은 때로는 Le Orme의 좋았던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면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스타일도 다르고 기타도 없고 템포도 훨씬 빠른 이 음악을 Le Orme와 헷갈릴 일은 없을테니 너무 몰개성을 걱정할 것까진 없어 보인다. 빠른 템포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5분 안쪽으로 짧게 끝맺으면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주도 나쁘지 않고, 특히 ‘Il Sogno dI Sigfrido’의 몰아치는 건반은 인상깊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어째 이 밴드도 노래는 좀 그렇다. 밴드의 핵심인 Nik Comoglio가 건반연주에 바쁜 와중에 굳이 노래까지 하는데, Keith Emerson을 본받아서 마이크는 좀 놨으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신돈 선생님들 아직 활동하고 계시니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Vinyl Magic, 1992]

Marillion “An Hour Before It’s Dark”

Marillion의 현재까지 정규반으로서는 최근작. 그러니까 신작이 나온지도 따지고 보면 4년 가까이 되고 있는 셈인데, 이 분들이야 체급이 있는지라 본인들 레이블에서 계속해서 라이브나 EP, 컴필레이션 등을 내놓고 있고 거의 팬클럽용 아이템에 가까울 EP들을 제외하면 대개 여느 밴드의 정규 라이브앨범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어서 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체감과는 사뭇 다르다. 하긴 그럼에도 이 공룡 밴드의 2022년작을 다룬 국내 사이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밴드가 한창 때처럼 매년 신작을 내놓지 않는 게 정상적일 것이다. 좀 있으면 이제 평균 나이 60도 아니고 70을 넘어가실 분들이기도 하고.

시절이 시절이라 코로나 시기에 대한 Marillion의 대답이라는 게 일반적인 소개인 듯하지만 Steve Hogarth 본인부터가 팬데믹에 대해 굳이 언급하려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배어들었을 뿐이라 하고 있으니 굳이 코로나 얘기를 하는 건 맞는 얘기일지언정 밴드 입장에서는 그리 기껍지만은 않을지도? 일단 확연히 전작보다 밝아진 멜로디와 분위기도 코로나 시대보다는 차라리 그 시절을 헤쳐나가기 위한 희망을 그렸다고 하는 게 나아 보이고, 특히 ‘Care’의 후반부 ‘Every Cell’부터 ‘Angels on Earth’의 화려한 피날레까지는 과장 좀 섞으면 이 우울한 시기를 극복해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들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전작부터 이어지는 모습이긴 하지만) 밴드가 Steve Hogarth 합류 이후 잘 보여주지 않았던 조곡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그러면서도 Steve Hogarth 합류 이후 밴드의 색채를 상징하는 모던한 얼터너티브 색채는 오히려 90년대 – 특히 “Season’s End”와 “Anorakphobia” 사이의 그 시절 – 보다도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Fish 시절의 팬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Hogarth 시대의 앨범을 꼽는다면 이제는 이 앨범이 아마 거의 첫손가락에 꼽히지 않을까 싶고, 밴드가 이런 서사적인 여정과 희망찬 분위기를 동시에 그려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는 Fish보다는 Hogarth의 보컬이 훨씬 어울릴 것이다. 간만에 듣는데도 꽤 감명깊었다.

[Ear Music, 2022]

PLJ Band “Armageddon”

Armageddon 얘기 나온 김에 한 장 더. 알고 보면 Vertigo에서 나온 이 그리스 프로그 밴드의 데뷔작은 나오자마자 신성모독을 이유로 판매금지를 얻어맞고 전량 회수조치에 들어갔으나…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카피들만이 시장에 남으면서 초절정 희귀반이 되었다라는 게 잘 알려진 얘기인데, 이제는 Vertigo 오리지널을 구하려는 게 아니라면야 여기저기서 재발매된 덕분에 꽤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처럼 헝그리한 음악 애호가라면 아마도 이건 부틀렉일까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Second Battle반을 구한 사례가 많지 않을까 싶다. 오피셜일 거라 일단 믿고 듣는 게 청자의 마음은 편할 것이다.

그래도 음악은 나쁘지는 않다. 아마게돈이라고 해서 화끈한 맛을 기대해선 곤란하고 앨범 전체가 사이키함을 강조한 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편인데(물론 ‘Armageddon II’ 같은 예외도 있다) 일반적인 프로그 팬이라면 과한 미니멀함에 피로함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Gong 같은 스타일을 좀 더 심각한 분위기로 풀어내면서 약간의 포크 바이브를 섞었다고 생각하면 좀 더 흥미로워질지도? Aphrodite’s Child의 “666” 마냥 등장하는 그리스어 나레이션도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 묵시록 이야기와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사실 신서사이저 연주는 Aphrodite’s Child보다는 Akritas 느낌이 강한 편인데… 뭐 어느 쪽이든 영국보다는 독일풍이란 것은 분명하니 그리스식 크라우트록이라 생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류의 앨범들이 대개 그렇듯이 희귀한 만큼 대단한 걸작이냐 하면 그건 확실히 아니지만 좋은 앨범이다. “666”이 1972년작이니까 한 8년만 일찍 나왔으면 “666”의 시퀄마냥 훨씬 좋은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생각하면 1974년에 나왔어도 판매금지 맞았을 거 같으므로 그냥 팔자 사나운 밴드의 아까운 데뷔작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Vertigo,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