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less “Without Support”

“Wisdom & Arrogance”에 대해서는 여러 상반된 평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앨범을 잘 만들었다고 보는 이들조차도 이 앨범이 블랙메탈 레이블에서 나올 만한 물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의견이 갈리는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활동을 접었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밴드는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다른 밴드와의 스플릿 앨범을 통해 한두 곡을 발표하는 외에 가시적 활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찌 생각하면 Ván Records가 이 밴드를 잡은 게 꽤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레이블 스스로도 블랙메탈 말고 다른 것도 자주 손 대는 곳인만큼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그러니까 10년을 훌쩍 넘겨서야 나온 이 3집이 자주제작도 아니고 어엿한 레이블이 있음에도 “Without Support”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건 좀 얄궂어 보이지만 이 괴이한 밴드가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오죽했으면 이러겠나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음악은 “Wisdom & Arrogance”의 노선에 있지만 전작에 비해서는 좀 더 풍성해진 구석이 있다. 버즈소 기타가 등장하는 ‘The Adorn Japetus’가 있긴 하지만 블랙메탈과 비교할 만한 모습은 아니고, 사이키 살짝 묻은 로큰롤을 보여주는 ‘Have a Nice Fight’나 ‘Puberty and Dreams’, 음울한 무드의 하드록에 가까운 ‘Shadow Spree’, ‘Better’ 등은 따지고 보면 전작에서 조금씩은 발견할 수 있었던 단초들을 좀 더 두텁고 다채로워진 연주로 재현한다. ‘De Profundis Domine’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애시드 포크의 모습은 “Wisdom & Arrogance”에서 딱히 봤던 기억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Joyless 특유의 스타일을 좀 더 완성도 높게 풀어낸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어찌 생각하면 데뷔작에서 보여준 개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평이한 DSBM에 가까워진 Lifelover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의 모습을 이 앨범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Shining이나 Bethlehem 등 장르의 ‘네임드’들도 살짝 발을 걸쳤으나 본격적으로 내딛지 못한 길을 본격적으로 나아간 장르의 문제사례… 이자 감히 선구자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밴드의 사진들에서 엿보이는 노르웨이의 콥스페인트 불한당들과는 백만년만큼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멤버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생각하면 음악과 사생활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범사례랄 수도 있어 보인다. 갑자기 좀 부럽다.

[Ván, 2011]

Joyless “Wisdom & Arrogance”

Joyless라는 밴드에 대한 갑론을박의 중심이 되면서 밴드가 블랙메탈이 아닌 포스트펑크? 또는 디프레시브 록? 같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밴드의 2집. 하지만 Forgotten Woods와 “Unlimited Hate”를 듣고 이 앨범을 덥석 잡은 이들에게는 앨범 시작부터 빅엿을 날려주는 작품이었으니 그렇게 한 방 먹은 이들의 상당수는 바로 PC로 달려가 인터넷 어딘가에 사자후를 토했을 것이다. 레이블도 문제였는데, Selbstmord Services는 바로 이 앨범이 나올 즈음 바로 Shining의 “Within Deep Dark Chambers”를 내놓았고(하긴 레이블 사장이 사장이다보니), DSBM이란 장르의 상징이 돼버린 이 앨범을 Joyless가 넘어서는 건 아무래도 요원했다. 사실 비교하면 용케 한 레이블에서 나왔구나 싶을 정도로 다른 음악이기도 하고.

그래도 음악은 꽤 들을만했다. 사실 Selbstmord Services보다는 Bella Union 같은 곳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스타일인데 Joy Division이 좀 더 거칠게 사운드를 다듬고 사운드와는 대조적으로 ‘depressive’한 소재의 가사를 내세우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Gruff의 보컬이 그나마 블랙메탈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사실 Ida의 보컬과 병치되어 등장하는 이 앨범에서 그 보컬을 듣고 블랙메탈을 연상하는 것도 무리다(특히나 ‘Isn’t It Nice?’). 징글쟁글 기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Trust Endorse’에서는 소시적의 The Smiths에서 Morrissey 특유의 위악을 덜어내고 허무감을 더한 듯한(그러면서도 베이스는 역설적일 정도로 통통 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어떻게 들으면 Cardigans가 흑화해서 죽음과 광기를 노래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허무함이 묻어 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꽤 화사한 데가 있는 멜로디 덕분일 것이다.

그러니 이 앨범을 모두가 좋아할 거라고는 절대 못하겠지만 아마도 이 앨범에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이도 많을 것이다.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후자라고 단정짓지 못하는 것은 밴드 특유의 역설의 미학을 잘 이해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어디 가서 맛보지 못할 분위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Selvstmord Services, 2000]

Cozy Powell “The Best of Cozy Powell”

90년대 매달 나오는 음악잡지들과 앨범을 사면 끼어 있는 해설지들을 보면서 록의 역사에 대하여 ‘공부’했던 경우들이라면 Cozy Powell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도 불멸의 헤비메탈 드러머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이 분이 Rainbow와 Black Sabbath에서 참여했던 앨범들의 면면들을 보면 맞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막상 이 분의 커리어에서 본격 헤비메탈 드러머였던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덕분에 옷만큼은 Motörhead에 갖다놔도 어울릴 정도로 입고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음악은 파워풀하면서도 수려한 재즈퓨전에 가까웠던 이 분의 솔로작에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미지가 헤비메탈이라 그렇지 ELP의 Carl Palmer의 땜빵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Keith Moon과 John Bonham 사후 그 빈자리를 메꿀 유력한 후보였던 분이니 당연한 얘기이겠다.

이런 분의 커리어를 베스트앨범 한 장으로 확인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재즈퓨전/프로그레시브 뮤지션으로서의 Cozy Powell의 면모를 단적으로 확인하는 데는 사실 이만한 앨범이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분 솔로 커리어의 정점은 “Over the Top”부터 “Octopuss”까지일 것이고 그걸 알아서인지 이 세 장 말고는 과감하게 생까버린… 트랙리스트는 덕분에 Cozy Powell 솔로 커리어의 엑기스를 제대로 담아낸 결과물이 되었다. 원래 앨범을 그리 일관된 색깔로 가져가는 분은 아니었으니 서로 다른 앨범의 곡들일지언정 섞어놔도 그리 이질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Over the Top’의 ELP풍 연주나 ‘The Big Country’의 심포닉을 듣고 있자면 사실 이 분의 본령은 헤비메탈보다는 ELP나 Colosseum II 스타일의 연주(특히 “Strange New Flesh” 시절의)에 있었다고 해도 맞아 보이고, 과장 조금 섞는다면 이 분이 Yes에서 Bill Bruford의 빈자리를 메꿨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저 드럼스틱으로 맘에 안 드는 후배를 때릴지도 모를 것 같은 인상의 커버 사진은 Cozy Powell의 면모를 별로 담아내고 있지 못할 것이다. 거칠지만 자기 음악만큼은 더없이 정교하고 섬세하게 하셨던 분의 연주를 실제로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끝내 아쉽다. 좀 오래 사셨으면 한국에서 한 번은 봤을 것 같은데..

[Polydor, 1997]

Paul and Linda McCartney “Ram”

이 앨범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얘기들이 있을 것이고 Beatles의 팬을 자임하는 이라면 이 앨범을 모르는 이도 찾기 어려울 테니 나 같은 메탈바보가 첨언할 것은 사실 별로 없다. 사실 나의 이 앨범에 대한 첫인상은 ‘Uncle Albert/Admiral Halsey’가 장두석의 ‘사랑한다 해도’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 Paul McCartney를 듣고 생각나는 게 하필 장두석이라니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게 어린 날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얘기해서 그렇지 장두석의 저 노래도 나쁘지 않았지만 비교 대상이 대상이다보니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할 데도 딱히 없었다.

뭐 그렇게 일단 장두석이 먼저 떠오르고 보는 앨범이긴 했지만 “Ram”은 Beatles는 물론이고 별로 아는 게 없었던 학생이 듣기에도 좋은 앨범이었다. George Harrison이나 John Lennon의 솔로작들이 그저 팝송이라 하기엔 좀 무겁게 느껴졌던(특히 “All Things Must Pass”와 “Imagine”) 음알못에게는 컨트리 테이스트와 적당한 유머를 동반한 이쪽이 더 듣기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3 Leg’나 ‘Monkberry Moon Delight’ 같은 곡은 다른 멤버들의 꼬장꼬장함이 도사리고 있는 Beatles의 앨범이라면 절대 들어가지 못했을 법한 곡이다. 듣는 이도 그렇지만 아마 만드는 이도 Bealtes 때보다 훨씬 마음 편하지 않았을까? 하긴 평생의 배우자(라기에는 좀 일찍 상처하시기는 했다만)를 만나서 만든 앨범이니 Beatles 막판의 ‘건들기만 해봐라 함 해보자’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Linda 여사님이 노래를 잘 하시는 건지 간혹 좀 헷갈리는 것만 제외하면 멋진 앨범이다.

[Apple, 1971]

Death in June “Take Care and Control”

11월이라고 하면 Death in June의 ‘The November Men’을 생각하는 미친놈은 별로 없겠지만 어쨌든 11월도 됐겠다 간만에 들어보는 Death in June의 1997년작. 이후의 법정분쟁으로 사이가 개판이 됐지만 어쨌든 장르의 거목들이었던 Douglas P.와 Albin Julius가 사이좋게 함께한 2장의 앨범 중 하나이기도 하니 Death in June의 디스코그라피에서야 얘기가 다르지만 네오포크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이 앨범이 나오던 즈음이 ‘좋았던 시절’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Albin Julius의 참여는 그만큼 Death in June의 기존 스타일(“Rose Clouds of Holocaust” 같은)에서 나름의 낭만을 좀 덜어내고 Der Blutharsch풍의 호전적인 인더스트리얼 경향을 더하는 것인지라, 이 앨범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이런 음악을 들으려면 Death in June이 아니라 Der Blutharsch를 듣는 게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어 보인다. ‘Frost Flowers’나 ‘The November Men’처럼 기존 스타일에 다가간 곡이 있지만 잊을만하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끝내 ‘Wolf Angel’을 통으로 노이즈로 채워버리는 모습이 그리 내키지 않았던 이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좀 더 먹먹한 음질이 공격성을 갉아먹은 “Operation Hummingbird”보다는 이 편이 좀 더 듣기 편할 것이고, 어쨌든 ‘The November Men’은 가사가 무척이나 시궁창이고 안온함과는 담을 쌓은 분위기일지언정 11월이라는 주제에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11월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노벰버레인이 질릴 판이라 더욱 그렇다.

[New European Recordings,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