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ageddon(UK) “Armageddon”

Armageddon이란 단어는 록/메탈에서 밴드명이나 앨범명으로는 꽤 흔히 보이는 편이고, 단어가 단어인지라 대개는 꿈도 희망도 없는 분위기를 그려내곤 하는데, 그리다 못해 밴드의 운명조차 꿈도 희망도 없어져버린 사례들이 아무래도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작명은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 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그래도 록/메탈의 역사에서 Armageddon이란 이름을 써먹은 수많은 밴드들이 그래도 내놓은 의미있는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이 앨범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니겠나 하는 게 사견. 물론 이 밴드조차 저 작명의 중요성을 극복하진 못한지라 밴드의 중심이 되었던 Keith Relf는 앨범이 나온 다음해 기타 치다가 감전으로 사망한다는 당혹스러운 사고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 한 장뿐인 앨범도 이후 다시 재발매되기까지는 한 15년 걸렸으니, 나름 그 시절 걸물들이 모여 만든 밴드의 팔자치고는 대단히 박복했던 셈이다. 말하고 보니 저런 사실을 들어 배철수를 한국의 Keith Relf라고 외치던 혹자가 기억나는데 아무 상관없는 얘기이니 각설하고.

그래도 결국 Renaissance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이 밴드의 음악은 어쩌다 저렇게 뽑혔는지 너무 헤비메탈처럼 보이는 커버만큼은 아니지만 멤버들의 본진을 생각하면 기대보다 많이 하드록에 기울어진 스타일이었다. 특히나 Bobby Caldwell(미국 AOR뮤지션 그 분 아님)의 드럼은 때로는 Motörhead가 생각날 정도로 스트레이트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Buzzard’ 처럼 이런 드러밍에 힘 잔뜩 들어간 기타 리프가 어우러진 곡을 혹자는 프로토-메탈의 모범사례로 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을 찾아듣는 이들은 아무래도 하드록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더 좋아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Last Stand Before’ 처럼 이런 화끈함과 함께 이 분들의 본진은 어쨌든 프로그레시브 록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추천하는 게 좋아 보인다.

어쨌든 펑크가 폭발하기 전 영국 하드록의 의미 있었던 지점…. 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후 재발매되는 데 15년이나 걸린 거 보면 다른 사람들 생각은 꼭 그렇지는 않았었나 보다. 역시 판장사 할 팔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치며 넘어간다.

[A&M, 1975]

Age of Heaven “Armageddon”

생소할 뿐만 아니라 찾아본들 나오는 것도 거의 없는 독일 90년대 초중반 고쓰 밴드의 데뷔작. 사실 앨범 생긴 거만 본다면 이게 어떤 음악일까 짐작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독일 고쓰의 나름 뿌리깊은 이름인 The Garden of Delight의 앨범을 주로 냈던 Dion Fortune 발매작이므로 고쓰 록 아니면 고쓰 기운이 묻어나는 신스팝 정도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The Sisters of Mercy를 따라갔을)4인조인데 키보드를 넣어주면서 정작 드러머는 없는 편성인 것도 그렇다.

그렇게 나온 음악은 사실 나쁘지는 않다. 아무래도 영국의 고쓰 클래식들이 포스트펑크의 기운과 영국 특유의 쟁글쟁글 리프를 감추지 못했다면 그보다 10년 늦게 튀어나와서인지 좀 더 힘있는 하드록 리프가 주가 되고, creepy한 정도랄 것까진 아니지만 90년대 초중반 초기 던전 신쓰의 기운을 풍기는 인트로도 나쁘지 않으며, Doctor Avalanche의 톤을 모사하는 듯한 드럼머신도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장르의 전형에 그리 비껴가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The Sisters of Mercy의 그림자 짙은(특히 “Vision Thing”) 분위기와 멜로디는 이 밴드가 어디 가서 아류 소리를 듣지 않기는 어려웠겠구나 짐작케 한다. 이럴 거면 아예 좀 더 메탈릭하게 나가서 Love Like Blood같은 음악을 했다면 좀 더 살림살이 낫지 않았겠나 싶기도 한데… 세상에 만약은 없을지니 의미없는 얘기일 뿐이다.

그래도 앨범 초반부의 ‘The Providence’와 ‘Black Dust’는 그 시절 독일 고쓰 씬이 생각보다 저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랄 수 있을 것이다. 장르의 팬이라면 일청을 권해본다.

[Dion Fortune, 1994]

Kingdom Come “Live & Unplugged”

Kingdom Come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꽤 그런 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소시적 서울음반이 아마도 비교적 야심차게 라이센스했을(야심이 없었다면 이런 걸 라이센스할 리 없다고 본다) “Twilight Cruiser”가 종로 뮤직랜드 한켠 재고떨이 코너를 호령하는 와중에도 그 앨범을 꽤 자주 들었던 사람이라지만 이 라이브앨범의 커버는 지금도 무슨 생각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렇게 앨범의 내용물과 상관없이 커버에 시원하게 극지방의 풍경을 박아넣은 사례로는 대표적으로 Messiah의 “Extreme Cold Weather”를 꼽을 수 있겠지만 어쨌건 앨범 제목이라도 무지무지 추운 날씨였던 Messiah에 비한다면 이쪽이 더 심각하지 않나 싶다. 국적만 스위스지 헝그리하게 그지없어 보이던 Messiah에 비해 그래도 4-5년 전만 해도 Polydor에서 앨범이 나오던 밴드였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이 앨범도 스위스 바젤 라이브란다. 스위스가 뭔가 터가 안 좋아 보인다)

그래도 앨범은 꽤나 수준 높은 라이브를 담고 있다. 벌써 문닫은 지 한참 된지라 공연을 실제로 볼 일은 요원한 이 밴드의 유일한 공식 라이브앨범이라는 가치도 있고, 딱히 빛 본 적은 없었지만 밴드의 좋았던 시절이라면 시절일 “Twilight Cruiser”까지의 주요 넘버들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도 있고, 애초에 이 밴드의 최대 강점이 Robert Plant의 좋은 점들을 꽤나 훌륭하게 따라가고 있는 Lenny Wolf의 보컬임을 생각하면 Lenny의 목소리가 이 라이브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에너지가 넘치는 라이브라고 한다면 그건 좀 거짓말이겠지만 오리지널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흠잡을 데 없는 퍼포먼스라기엔 부족함이 없다.

다만 2CD의 경우 ‘You’re Not the Only’는 뭐하러 두 번 연속으로 굳이 넣어 두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Get It On’ 같은 히트곡이라도 끼워 넣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런 센스가 있었다면 이 밴드가 이렇게까지 묻히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드니 그게 팔자려니 싶다. 새삼 좀 아쉽다.

[Viceroy Music, 1996]

Josh Dally “Speak Your Mind”

Josh Dally는 신스웨이브 팬이라면 그래도 익숙할 만한 이름인데, 본진인 At 1980보다는 Timecop 1983과의 활동이 그래도 이름을 알린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긴 나온 시점으로 생각하면 그게 그거인만큼 그냥 80년대 AOR스타일을 재현하는 류의 신스웨이브에서 2020년 이후 가장 이름을 알리고 있는 보컬리스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물론 신스웨이브 자체가 한물간 단어가 되어 버린 지금 이런 소개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Josh Dally는 Timecop 1983과 At 1980 앨범 외에도 이 한 장의 솔로작을 내놓았는데, 원래부터 AOR에 가까운 음악을 하기는 했지만 이 앨범에 와서는… 그냥 신서사이저가 무척이나 강조되었지만 본령은 Brian Adams 류의 멜로딕 하드록 내지는 AOR에 있는 음악을 한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물론 Timecop 1983이 손을 빌려준 ‘Take Me Back’은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으로 신서사이저가 중심에 있는 음악이지만, 기타에 베이스에 드럼까지 Josh Dally가 혼자 다 해먹고 있는지라(말이 그렇지 드럼은 암만 들어도 드럼머신 소리긴 하다만) 이 쯤 되면 이걸 1인 멜로딕 하드록/AOR 프로젝트라고 못할 이유는 또 뭔가 싶다. 물론 이런 류의 음악이 흔히 들려주는 후끈한 솔로잉까지는 기대하기 어렵긴 한데(‘Live and Learn’에서 테크니컬하지만 않지만 한 소절 보여주기는 한다), 때로는 좋았던 시절의 Def Leppard를 떠올릴 수도 있을 청량한 톤의 기타는 80년대 중후반 할리우드 영화에서 햇살이 빛나는 해변을 가르는 오픈카를 타고 질주하는 선남선녀(아마도 둘 다 금발 백인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시절이었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쓰고 보니 Josh Dally가 혼자 다 하는 걸 빼면 At 1980과 사실 크게 다를 건 없다는 게 단점이겠지만 어쨌든 이 이름을 아는 이라면 At 1980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 싶다. 어떻게 봐도 확실히 신스웨이브는 한 물 갔다는 게 맞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쉬고 또 활동했으면 좋겠다.

[NewRetroWave, 2022]

Tangerine Dream “Electronic Meditation”

크라우트록 얘기한 김에 좀 더 한다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은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의 열화판에 가까웠을 밴드들 가운데 확실히 거의 이견 없이 인정받은 사례는 Tangerine Dream과 Kraftwerk 정도일 것인데… 당대의 록 팬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이긴 했지만 시작부터 이걸 록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물음표를 던져줬던 Kraftwerk에 비하면 크라우트’록’을 더 잘 대변하는 것은 Tangerine Dream이라는 게 사견.

특히나 이 데뷔작은 록이라기보다는 앰비언트에 가까워진 “Zeit”부터의 스타일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기괴한 전자음이 있지만 어쨌든 록 밴드로서의 Tangerine Dream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밴드의 유일한 정규작이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앨범에서의 Tangerine Dream은 굳이 크라우트록이라는 용어를 쓰기보다는 무척이나 괴팍하면서도 공간감 넘치는 사이키델릭 록을 연주했고, 그러면서도 일견 클래식의 잔재를 남겨두고 있는 밴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angerine Dream의 앨범에서 혼란하지만 화끈한 기타 연주를 발견할 수 있고(‘Reise Durch Ein Brennendes Gehirn(Journey Through A Burning Brain)’) 가끔은 심지어 블루지한 면모(‘Ashes to Ashes’)까지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소나타마냥 수미쌍관까지 맞춰주는 앨범의 구성까지 챙겨가고 있으니, 사실 전형적인 록 음악의 팬이라면 Tangerine Dream의 앨범 중에서 이 정도만 들어본대도 괜찮지 않을까? 애초에 모을 생각을 접게 만드는 이 밴드의 미칠듯이 방대할뿐더러 중간중간에 참 듣기 힘든 결과물도 적잖이 끼어 있는 디스코그라피를 다 찾아듣는 건 영 무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Tangerine Dream은 이후의 Guru Guru나 Ash Ra Tempel 등의 밴드들의 단초들을 몽땅 담아낸 데뷔작을 내놓고 ‘아 크라우트록 이 정도 했으면 됐지’ 하고 말만 밴드일 뿐 슬슬 전자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 하면 과장이 없지 않을지언정 공감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두 번 연속으로 듣기는 쉽지 않지만 멋진 앨범이다.

[Ohr, 1970]